"조기숙 조부,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로 근무"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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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7.06.18 13:46 | 수정 2007.06.18 14:28

    '언론과의 전쟁' 전위대로 나선 조기숙씨 조부의 일제하 행적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친위대로 나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할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에서 기자로 일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월간조선 7월호가 보도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조 전 수석의 조부인 조강희(趙岡熙)는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일보(京城日報)와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일했으며, 친일신문 동광신문(東光新聞)에서는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조강희는 조 전 수석의 증조 할아버지로 1890년대 동학혁명을 촉발한 탐관오리 조병갑(趙秉甲)의 둘째 아들이다.

    정진석(67)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저서 ‘언론조선총독부’에서 조강희가 기자로 일한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총독부 통감으로 부임한 후 침략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06년 창간한 통감부 기관지라고 설명했다.

    정 명예교수는 “두 신문은 일제시대 총독부 기관지였다”며 “총독부는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후 3개 언어로 기관지를 발행했는데 경성일보(일본어), 매일신보(한국어), 서울 프레스(영어)가 그것이다”고 말했다.

    정 명예교수는 “이 3개 기관지는 한일합방 이전에는 각기 별개의 신문사로 창간됐으나 합방 후에는 통합과 분리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선전하고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조를 폈다”면서 “조강희씨는 대표적인 총독부 기관지 두 곳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전 수석은 자신의 선조 이력이 논란이 된 것과 관련, 지난해 12월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일제 대 친일파였으나, 해방 후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무위도식(無爲徒食)했다. 저는 조상으로부터 한 푼도 물려받은 자산이 없다. 그래서인지 부채(負債)의식이 없다”고 말했다.

    경성일보는 일제 치하 한국 언론계에서 막강한 위상을 차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성일보는 한말(韓末) 최대의 민족지였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통합해 직접 경영했다. 조강희가 기자로 근무했던 매일신보 또한 1938년 경성일보로부터 독립된 법인으로 분리될 때까지는 경성일보와 하나의 신문사나 마찬가지였다. 경성일보 사장을 비롯해 일본인 임원진이 매일신보 임원진을 겸했다.

     

    조강희는 두 신문사를 다닌 이후 동아일보(東亞日報)·시대일보(時代日報)에서 1년 3개월 정도 기자생활을 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던 ‘조선사상통신사’를 거쳐 또 다른 친일신문인 동광신문에서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는 시대일보 정치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일본어로 ‘한국인의 이름 짓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전북 전주에서 발행된 동광신문은 일본인이 경영하던 전북일보의 자매지 형식으로 1920년 11월 18일에 창간돼 한국어로 발행된 일간지였다. 사장은 전북일보 사장인 일본인이 겸했고, 편집국장 또는 주필은 한국인이 맡았다.

    *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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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기사] 조기숙 "조부는 해방후 모든 자리서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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