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심경 토로' 편지 발견

  • 조선닷컴
    입력 2007.06.15 08:55 | 수정 2007.06.15 12:01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긴장돼)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 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1753년 또는 1754년 어느 날)

    사도세자가 장인 홍봉한(洪鳳漢)에게 보낸 편지들이 일본에서 발견됐다고 동아일보가 15일 보도했다. 권두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사도세자의 편지 내용을 번역해 공개한 것이다.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조선시대 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3대 편지를 촬영한 흑백사진 자료 11첩을 발견했던 것.

    사도세자는 1735년 태어나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27세 나이로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주인공. 아들 정조가 장헌(莊獻)이란 이름을 올렸고, 1899년 고종 때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됐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조선왕실 여인의 회고록으로 유명한 ‘한중록’에서 남편의 비화를 소개했다.

    현재 남아 있는 사도세자의 편지는 거의 없으며 알려진 자료도 개인적 고백이 아닌 공식 문서가 대부분이다. 학계에서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던 사도세자의 병세와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권 교수의 말을 인용, “1910년대 초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홍봉한의 5대손인 홍승두 집안의 원본을 거간꾼에게 구입해 일본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현재 원본은 야마구치(山口) 현립도서관에 보관돼 있고, 도쿄대 동양사학과 다가와 고조(田川孝三) 교수가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1965년부터 도쿄대에 보관해 오다 퇴직 후 유품으로 남겼다.

    권 교수는 이 편지가 사도세자의 친필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혜경궁 홍씨가 ‘친정에 있는 3대 임금의 필적과 서찰을 첩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하라’고 밝혔다는 홍씨 가문의 글이 있다”고 밝혔다.

    편지에는 아버지 영조에 대한 불만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사도세자는 만 14세인 1749년 장인에게 쓴 편지에서 “내 나이 올해로 이미 15세의 봄을 넘긴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아직 한번도 숙종대왕의 능에 나아가 참배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었다.

    권 교수는 “사도세자는 숙종대왕의 능에 참배하지 못하니 자신이 세자인지 자격지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라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대목도 나온다. 1756년 2월29일 21세의 사도세자는 “나는 한 가지 병이 깊어서 나을 기약이 없으니, 다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민망해할 따름입니다”라고 썼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6년 전 고백이다.

    권교수는 “궁내 의관에게 자신의 병세를 전하면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버지 영조에게 전해질 것이 두려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알약을 복용한 지 이미 수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습니다"(1754년 10월 또는 11월 추정)라는 대목에서는 사도세자가 자신의 병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특히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허황되고 미친 듯합니다”라는 내용은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네 번 정도 반복됐다.

    사도세자는 장인에게 국가의 제도와 규칙이 설명된 서적과 지도를 구해 줄 것을 부탁하는 등 나라살림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보내 주신) 지도를 자세히 펴 보니 팔도의 산하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고인이 말한 바 ‘서너 걸음 문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강남 수천리가 다하였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어 삼가 표피 1영을 보내니 웃으며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1755년 11월 그믐날)

    권 교수는 15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술발표회에서 번역 내용과 편지 고증 과정을 발표하고, 학자들과 자료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