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후보 토론회, ‘유튜브’로 한다

입력 2007.06.15 00:38

수백만달러짜리 TV광고보다 더 큰 영향력
CNN과 토론 공동개최… “자극적 내용 우려”

장면 #1 로봇처럼 똑같은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거대한 스크린 속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보고 있다. “나는 죽도록 일하는 애국자들을 원합니다.” 누군가 거대한 스크린을 부수고, ‘내년 대선에서 우리는 2008년이 1984년(독재자 ‘빅 브라더’가 등장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제목)과는 다르다는 걸 보게 될 것’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장면 #2 공화당 존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이 TV 토크쇼 진행자의 동성 결혼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제대로 된 결혼식만 한다면 (동성 결혼) 허용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11분 뒤, 매케인 의원은 “그걸 합법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루 동영상 클릭수가 1억회에 달하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미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네티즌들이 토론회나 대중집회에서 후보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는 동영상이 수백만달러짜리 TV광고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유튜브 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장면 #1의 소재가 된 힐러리 클린턴(Clinton) 상원의원이다. 힐러리를 ‘빅 브라더’로 패러디한 이 동영상은 민주당 경쟁 후보인 버락 오바마(Obama) 상원의원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 동영상으로 힐러리 의원은 4월 유튜브 정치 동영상 시청시간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그래픽


장면 #2의 매케인 의원 동영상은 ‘특급 말뒤집기(Double Talk Express)’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민층을 공략해온 민주당 존 에드워즈(Edwards) 전 상원의원의 경우, 400달러짜리 고액 이발을 한 사실이 알려진 뒤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는 동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예 유튜브는 사상 처음으로 오는 23일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를 CNN 방송과 공동 개최한다. 토론회의 질문자는 전적으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네티즌들이다. CNN은 “가장 창의적인 유튜브 동영상 질문을 채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화당도 오는 9월17일 비슷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동영상을 통한 질문은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면서 “각 후보에게 기회도 위기도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컨설턴트 조 트리피(Trippi)는 “현재의 대선후보들이 유튜브로 몰려 가는 것은 과거의 대선후보들이 이른 아침 공장 앞에서 출근길 근로자들을 기다렸던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튜브 선거’는 깊이 있는 정책 경쟁보다 네티즌의 순간적 반응에만 매달리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대중잡지 ‘배너티 페어’ 6월호는 “대선판이 갈수록 코미디 단막극을 닮아간다”며 “구식 정치 서사시의 시대는 끝나고 유튜브 정치의 새벽이 왔다”고 전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