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A 세계챔피언 유제두, 약물 중독설의 진실?...이제는 밝힌다

입력 2007.06.01 09:55


 "나는 완전히 당했어. 그런데 포먼은 아니더먼."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었던 유제두씨(61)가 작심토로를 했다. 한국과 미국 프로복싱계의 수수께끼인 챔피언의 약물중독설에 관한 가슴에 맺힌 '한'을 여과없이 밝혔다. 30여년 전, 태평양을 사이에 둔 '복싱 영웅'이 있었다. WBA 주니어미들급 왕자인 유제두와 최중량급인 헤비급 챔프인 조지 포먼(미국)이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타이틀을 잃은 뒤 약물 중독설에 휘말렸다. 주변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하지만 한 세대가 훌쩍 지났음에도 '무성한 설'만 있을 뿐 밝혀진 것은 없다.


 세월과 함께 그들의 주장도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런데 포먼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에서 '지난 74년 헤비급 3차방어전에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8회에 KO패한 것은 약물 중독 때문이었다'며 억울함을 다시 세상밖으로 끌어냈다.


 영광과 아픔을 조용히 세월에 맡겼던 유제두씨도 포먼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가슴에서 '화석'이 되다 만 '응어리'를 끄집어냈다.


 유월의 첫 날.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태양체육관에서 만난 기자에게 "나는 분명히 당했어. 하지만 증거가 있어야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76년 2월 도쿄에서 와지마 고이치와 방어전을 치렀지. 경기 몇 시간 전에 주먹에 붕대를 감고 몸을 풀려고 하는데 팔에 힘이 없는거야. 링에 올라서도 마찬가지였어." 약물 중독이 아니라면 설명 방법이 없다는 그는 포먼은 다르다고 말했다. "TV로 봤는데 포먼의 주먹에는 힘이 있었어. 그는 헛손질을 많이 해 체력이 떨어졌던 거여. 펀치에 힘이 실렸는데 약물 중독이라면 이상하지."


 옛 일 회상으로 답답해 하던 그는 이내 포용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이젠 다 받아들여.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어." 그는 요즘 마음 안정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절을 찾는다고 했다.


 유제두씨는 75년 6월 적지에서 와지마 고이치를 7회 KO로 눕히고 한국의 세번째 세계챔피언이 됐다. 1차 방어전에서 야구선수 출신인 마사코 마사히로(일본)를 6회 KO로 물리친 그는 2차 방어전에서 와지마 고이치에게 예상치 않은 패배를 당하고 3년 뒤 은퇴했다. 평생 복싱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초로의 스포츠인. 그는 예순이 넘은 요즘에도 오전 6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체육관을 지키며 선수 지망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복싱의 도'를 가르치는 낙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가슴속의 '한'은 세월이 흘렀어도 완전하게 '화석'이 되지는 않은 듯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포먼이 자서전에서 약물 중독으로 알리에게 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본인만 알겠지. 그러나 난 수긍할 수 없어. 당시에 TV로 봤는데 포먼의 펀치에는 힘이 실려 있었어. 포먼의 무지막지한 주먹에 많은 선수들이 초반에 나가 떨어졌지. 그런데 알리는 그의 펀치를 커버하고, 피하면서 지능적인 경기를 했어. 알리의 교묘한 힘 빼기 작전에 포먼이 지쳤던 거야. 알리의 작전 성공으로 봐야 돼.


 


 -와지마 고이치에게 타이틀을 잃은 뒤 매수설과 약물 중독설이 제기되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 데 돈에 매수되지는 않았어. 약물에 중독이 된거야. 나는 그때 2차방어전(와지마 고이치)에 성공하면 미들급 챔피언인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몬존과 대결하기로 합의된 상태였어. 대전료가 무려 50만달러가 책정된 이벤트야. 와지마와의 파이트머니는 4만달러였어. 경기는 몬존 측에서 제의했는데 와지마 고이치와의 옵션 때문에 날짜를 뒤로 미뤘어. 그런 내가 돈에 매수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약물 중독이라면 증세가 있었을 것입니다.


 ▶경기가 있던 날이었지. 몸이 영 안좋은 거야. 주먹에 붕대를 감고 연습을 하는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럴까라고 걱정을 했어. 옆에 있던 트레이너(김덕팔)에게 얘기를 했지.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더군.


 


 -당시에 약물 중독 검사를 할 생각은 안했나요.


 ▶그땐 생각이 약물중독에 미치지 못했어. 왜 그럴까라고만 생각했지. 또 그 무렵 복서들은 약물 중독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 그 분야에 대해선 전혀 몰랐거든. 그때 알았다면 소변이라도 채취해서 가져왔겠지. 뭘 몰랐고 생각도 못했는데 어떤 조치를 할 수 있겠어.


 


 -약물 중독이라는 것을 언제 확신을 했나요.


 ▶경기가 끝나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81년쯤, 정보기관에 근무하던 복싱 후배가 이야기를 해주더군. 정보기관에서 내가 타이틀 방어후 DJ(김대중)에게 인사가는 것을 사전에 막으려고 작업했다는 거야. 난 챔피언이 되었을 때 대통령께 인사를 한 뒤 DJ에게도 찾아갔었지. 그것을 안 정보기관이 과잉충성을 했다는거야. 상황을 유추하니까 맞아떨어지더군. 하지만 그 일로 후배가 난처한 처지에 빠졌지. 나도 '남산'에 호출됐고, 거기에서 만난 후배는 정보기관 직원들 앞에서 "형님. 그것은 다 제가 지어낸 말이에요"라고 하더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유일하게 증언한 사람도 번복을 하고…. 그 뒤로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거야.


 


 -후배가 약물 중독 근거를 얘기했을 텐데요.


 ▶후배가 묻더군. "형님, 그날 딸기 드셨죠. 그 속에 약을 넣었다고 하던데요." 그 말 듣고 보니까 내가 특별히 먹은 음식은 그 정도야. 곰곰이 되새겨도 그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아. 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힘이 빠지겠어.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힐 방법은 생각하지 않았나요.


 ▶누군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얘기하더군. 그러나 이젠 잊기로 했어. 약물중독이었다고 세상에 말하면 되지, 구태여 밝혀내고 싶지는 않아. 내가 나이가 먹고, 팬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지고….이제 밝혀서 뭐가 좋겠어. 내 가슴에만 묻어두지 뭐.


 


 -당시 와지마 고이치에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다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와지마 고이치는 나의 적수가 될 수 없어. 내가 그에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야. 기량이나 체력, 경기 감각 모든 면에서 앞섰지. 더욱이 그는 1년 넘게 링에 서지 않았어. 복서가 6개월만 경기를 갖지 않으면 베스트 기량을 선보이가 쉽지 않아. 난 그 무렵 롱런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죠.


 ▶당시 주니어미들급엔 강자가 없었어. 미들급에서 약한 선수가 내려오고 웰터급에서 밀린 선수가 체중을 올렸어. 그런데 나는 강자로 인정됐었어. 그래서 미들급 챔피언 몬존이 대결을 제의했던 거지. 와지마 고이치로부터 에디 가소가 타이틀을 가져갔는데, 그 친구도 특징이 없는 선수야. 참 안타까운 일이야. 여하튼 도전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당시 내 주먹만 울었어.


 


 -그 뒤 와지마 고이치와의 인연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뭘하는지 몰라도 한 때 복싱체육관을 운영했어. 80년대는 내 제자와 그의 제자가 동양타이틀매치를 하기도 했지. 내 제자가 이겼어. < 편집국 전문기자 sjlee@ / 사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유명 스타에게는 정치권유도 뒤따르는 데요.


 ▶몇 차례 권유는 있었어. 고향인 고흥에서 국회의원 출마하라는 이야기를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지. 나는 복싱밖에 모른다. 내 직업에 만족한다고.


 


 -후배 챔피언들과는 자주 만나나요.


 ▶지난 82년에 김기수 선배에게 챔피언 모임을 만들자고 건의했어. 그런데 후배들이 하도 반목이 심하고 자존심도 세서 안되더군. H는 Y가 나오면 안나온다고 하고, Y도 H 얼굴을 보기 싫다며 손을 내저어 끝내는 모임 결성을 못했어. 개인적으로 홍수환이나 김상현 등 한 두명씩은 만나도 모임은 없어.


 


 -은퇴 후 재야 주먹세계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요.


 ▶내가 주먹 쓰는 사람인데, 어떤 주먹이 연락하겠어.


 


 -생활에 여유는 있나요.


 ▶79년에 은퇴하고 80년부터 해태제과의 대리점을 했지. 한 10년 했는데 돈을 좀 없앴어. 그러나 이 것외엔 한 눈을 팔지 않고 복싱만 해서 생활은 비교적 괜찮은 편야. 주위에 손 벌리지는 않지.


 


 -배출한 선수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략 1000명은 넘겠지. 유명한 선수도 꽤 있었구. 84년 IBF(국제복싱연맹) 챔피언에 오른 장태일을 비롯해 곽정호 차남훈 장영순 정선용 등 동양챔피언도 여러명 있었어.


 


 ��1. 그날 무슨 일이


 1976년 2월 17일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제두씨의 증언으로 재구성한다. 유제두는 아침 7시쯤 일어났다. 한 시간 뒤 계체량서 한계체중(69.85kg)으로 통과했다. 이어 김덕팔이 내민 딸기 몇 개로 갈증을 해소했다. 유제두가 김덕팔과 후배인 조 민에게 권했으나 모두 사양. 숙소인 그랜드파레스호텔 인근 교포식당에서 꼬리곰탕으로 식사를 한 뒤 10시쯤 수면을 취했다. 오후 1시쯤 잠에서 깨어났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유제두는 김덕팔에게 상황을 하소연했다.


 유제두:형님.제 몸이 이상해요. 왜 이렇게 안 좋을까요.


 김덕팔:아마 비가 오려고 하니까 그럴거야. 산책을 하면 좋아질 거야.


 그러나 30여분을 산책했어도 몸엔 여전히 힘이 없는 상태였다. 계속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 7시무렵 경기장에 도착했다. 주먹에 붕대를 감고 몸을 풀려고 했으나 여전히 힘이 없었다. 유제두는 다시 걱정스럽게 말했다.


 유제두:경기를 할 수 있을까요. 손이 안나가는 데요.


 김덕팔:무슨 소리야. 일단 링에 올라가면 괜찮을 거야. 빈 좌석없이 관중이 꽉 찰텐데.


 유제두:팔에서 힘이 쭉 빠져요. 몸이 말을 안들어요.


 ��2. 그 후


 그는 호텔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음식물을 다 토했다. 경기 후 토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후 귀국한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약물중독 가능성을 말했다. 이에 김덕팔 트레이너와 그는 거짓말탐지기가 동원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유제두는 뒤를 봐주던 이들과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매니저(강석운)는 80년 무렵부터 30년 가까이 연락두절이 됐다. 김덕팔 트레이너도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유제두는 김덕팔이 그 후 한번 서울에 나왔다는 소식만 주변에서 들은 게 전부였다. 연락처도 알아내지 못했다.


 


 ▶1946년 전남 고흥생 ▶고흥중-고 졸업 ▶1968년 프로데뷔 ▶1971년 7월 미들급 동양챔피언 ▶1975년 6월 WBA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 획득 ▶1976년 2월 WBA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 상실 ▶1979년 8월 은퇴(56전 51승(29KO)2무3패) ▶부인 한장심씨(59)와 2남 1녀 ▶현재 태양권투체육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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