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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트렌드 샷'] 펭귄 아빠, 독수리 아빠?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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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7.05.30 18:24

    
	일러스트=장원선 onesun3@yahoo.co.kr
    일러스트=장원선 onesun3@yahoo.co.kr
    선배의 아이가 돌아왔다. 미국에서 1년 6개월 만이었다. 선배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것이 실패한 유학이라는 걸 알았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의 적응 문제 때문이었다. 조카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를 혼자 미국까지 보내게 된 선배의 사연이야 이미 TV 다큐멘터리 같은 곳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건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단의 문제였고, 사회 문제였다. 선배가 말했다. “진짜 거품은 부동산 거품이 아니라는 걸 알겠어. 반포에 있었을 때는 강남권이라 엄마들이 유달리 극성스럽다고만 생각했었어. 근데 수원에 내려와 보니 이곳도 전혀 다르지 않더라. 진짜 거품은 교육거품이야.”

    외국계 학습지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이한테 인지교육을 시키는 엄마도 있어. 내가 맡은 회원 중엔 7개월짜리 쌍둥이를 가진 엄마도 있는데, 보모 둘이 아이를 하나씩 안고 내 수업을 들어. 그런데도 그 엄마는 자기 아이가 너무 늦었다고 매일 보충수업을 요구해. 놀랍지 않니?” 친구는 자신의 수업을 보모까지 끼어서 듣는다는 것도 기막히고, 수업의 80퍼센트는 졸고 있는 아기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나 이 일 시작하면서, 아이 낳기가 더 무서워졌어.”

    나로 말하면, 점점 아이를 가진 친구나 선배 만나는 게 무섭다. 영어가 대세라 외고가 각광받고, 금융권에 취직해 MBA를 따오는 게 유행이라지만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립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영어유치원에서 안 쳐지게 하기 위해 개인 영어 교사를 따로 붙인단다. 사교육에 있어선 사람들의 이성은 거의 마비 된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한 엄마는 사채 빚까지 얻어 딸을 유학 보내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을 불살라서라도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술자리에서 선배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요즘 한국 아빠들의 종류가 네 가지가 있어. 독수리 아빠,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국내산 기러기 아빠.” 경제적으로 풍족한 독수리 아빠는 원할 때 비행기를 타고 자식이 있는 곳으로 직행할 수 있다. 기러기 아빠는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서 다녀올 수 있고, 펭귄 아빠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펭귄처럼 좁은 보폭으로 한국에서 자식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국내산 기러기 아빠는 뭐야?”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자식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아내가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의 아빠란다. 아이들은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고, 아내는 식당일이나 입주 가정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집에 ‘거주’ 하고 있긴 하지만 ‘대화’는 불가능한 형태의 가족 말이다. 맙소사!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라 전쟁 수준이었다. 토플대란 같은 말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실감이 났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이것이 ‘불안’과 ‘공포’에 비롯된 일종의 불안성 장애란 말을 했다. 유학을 보내지 않고, 과외를 시키지 않으면 아이가 영영 주류에서 이탈할 것 같은 공포심 말이다. 그래서 아이보다 부모가 더 조급해하고, 불안해 한다는 말도 했다. 이쯤 되면 탄식처럼 이런 말이 나올 법하다. “독신이라서 다행이야!” 왜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가 아니라 개나 고양이를 키워서 다행이란 말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내가 만난 한 문학 평론가는 요즘 드라마엔 자식 이름 대신 왜 ‘아들’이나 ‘딸’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유명사인 아이 이름을 굳이 아들, 딸 같은 일반명사로 바꿔 부르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고, 징그럽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거침없이 하이킥’만 봐도 박혜미는 늘 윤호와 민호란 이름 대신 아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아들! 우리 아들들!” 나는 이것 또한 부모의 ‘불안’ 심리에 기인한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단독자로 혼자인 게 무서운 것이다.

    언젠가 건강해지려는 욕망이 과해 ‘웰빙 증후군’을 만든단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근데 우리 시대는 지금 ‘과잉교육’ 시대를 맞고 있다. 공부란 시작과 끝이 있는 게 아니다. 좋은 대학만 보내면 끝날 것 같지만, 그 뒤엔 취업문제가 생기고, 승진과 창업 같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이 연달아 생긴다. 중요한 건 인생 자체가 하나의 ‘공부’라는 사실이다. 취업 후 재테크, 부동산 책만 판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답답했다. 돌아온 조카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한단 말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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