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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광기어린 증오의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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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7.05.28 15:29

    이영훈 교수 “조정래씨는 사실까지 조작”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탈과 학살로 가득 찬, 분노와 증오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식민지기의 민족사적 내지 세계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역사소설가가 나와서 식민지기의 수탈과 개발을 상징하는 김제와 군산의 역사를 성찰의 역사소설로 다시 써 주길 고대해 마지 않는다.”

    한국 경제사 전공인 서울대 이영훈(55) 교수가 ’태백산맥’과 함께 소설가 조정래씨의 역사대하소설을 대표하는 양대 축으로 거론되는 ’아리랑’ 전 12권(1990-94)을 ’역사학 텍스트’로 분석한 결과, 역사소설로는 자격과 함량 모두 미달이라는 결론을 내린 다음에 한 말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아리랑’과 같은 역사소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이 교수는 역사소설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트럭 한 대 분량이나 되는 자료를 섭렵했다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 시바 료타로를 곳곳에서 상기시키면서 조씨는 과연 얼마나 되는 자료를 섭렵했느냐고 물었다.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서 이 교수는 ’우리시대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조정래씨와 그의 ’아리랑’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교수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룬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총평했다.

    그러한 가장 중요한 근거로 소설이 제시한 연대기적 사실조차 대부분이 전혀 사실과는 동떨어진 점을 꼽으면서 “나는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도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예컨대 ’아리랑’ 첫 대목에서는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런 법령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리랑’은 태연히 토지조사사업기간에 차갑수와 같은 즉결처형사례가 4천여 건에 이른다고 주장한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나아가 ’아리랑’은 곳곳에서 평화롭던 김제평야가 러일전쟁 이후에 야금야금 일본인 지주 손에 들어갔다고 묘사한 것은 물론, 그 이전에 실제 전라북도 관찰사로 재직한 이완용이 김제만경평야를 일본에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이는 역사조작이라 이 교수는 덧붙인다.

    이 교수에 의하면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갈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가 된다. 이 평야를 일본인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를 곡창지대로 개발한 것은 오히려 일본인들이 된다.

    그렇기에 농지를 빼앗긴 조선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내몰렸다는 ’아리랑’의 묘사와는 달리, 오히려 수리조합결성을 통해 김제만경평야가 개발됨에 따라 조선농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리랑’에서 이처럼 사실조차 호도한 사례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구체적이며 총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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