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전 수필가 피천득(皮千得 97)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고인의 영정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사코와의 세 번의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한 수필 ‘인연’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명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97) 선생이 25일 오후 11시40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20세기 한국 문단의 산증인이자 최고령 문인이었던 피 선생은 지난주부터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한때 호전돼 퇴원하기도 했으나 25일 오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 선생은 10세에 모친을 여읜 뒤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춘원 이광수의 집에서도 잠시 살았던 그는 주요한 선생의 주선으로 상해 후장대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한때 교사로 근무했으며, 해방 직후인 1946년 경성대학(현 서울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유족으로 부인 임진호(89) 여사와 세영(재미 사업가), 수영(울산의대 신생아과 교수), 딸 서영(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등 2남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