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엄마가 학교 불까지 끄러 가야 하나

조선일보
  • 조주은 여성학자·서울시립대 강사
    입력 2007.05.20 22:24

    결혼 후 지방의 한 대도시에 살 때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눈에 띄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그 어머니는 집 앞 수퍼를 갈 때에도 완벽한 머리손질, 꼼꼼한 화장, 화사한 옷차림을 보여줘 동네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여성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핸드백에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넣고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하고 오곤 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집에 가서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고 자기관리에도 충실한 그 여성에게 나는 엉뚱한 질문을 하나 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그녀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새로 태어나고 싶어요.”

    지난 주 목요일 오후에 일어난 사고 뉴스는 내게 충격을 안겨주면서, 결국 컴퓨터 자판에 눈물이 떨어지게 했다. 서울 중랑구 원목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소방안전교육을 받던 중, 사다리 차 와이어가 끊어져 어머니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관련 기관장들은 직위해제당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일이면 더 끔찍한 사건사고가 기다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쯤 되면 이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되고 잊혀질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은 바로 “학교에서 소방안전교육을 하는 자리에서 왜 어머니들이 사다리 차까지 타게 되었나?”이다.

    물론 이번 사고는 사다리 차에 누가 탔든 간에 생명을 잃었을, 예정된 인재(人災)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만을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왕왕 ‘모성본능’이라는 신화에 입각해 곶감 빼먹듯이 어머니들의 노동을 착취한다. 소방훈련 현장에 어머니들이 참석하게 된 배경에는 학교 측의 참석 요구와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요구는 대부분의 초등학교에 관행 아닌 관행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들끼리 자주 하는,“아이는 인질, 엄마는 노예”라는 자조 어린 말에 이런 현실이 잘 나타난다.

    자녀 양육은 학부모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아버지의 책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 자녀의 어머니들은 교통경찰(녹색어머니회), 선생님(명예교사), 도서관 사서(어머니 독서 도우미), 환경미화원(회장단 어머니를 포함한 어머니), 학교급식검수(급식소위원회 소속 어머니), 배식도우미(어머니급식당번) 등의 다중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는 언제까지 어머니의 자녀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어머니들의 동원을 정당화할 것인가? 아이들의 등·하굣길의 안전은 경찰청이 책임져야 하고, 급식자재 검수는 보건복지부 소속 전문요원이 담당해야 하며, 다양한 부역노동들은 정식으로 고용된 전문가들이 맡아야 한다. 교육부·여성가족부·노동부·보건복지부가 업무 조정을 통해 의무를 나누고, 그 밖의 일상적인 업무는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
    <br>학교에 불이 나면 어머니들은 일하다가 불까지 끄러 가야 하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머니 동원’은 비교육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이런 관행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 부당한 착취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바란다. 오죽하면 인간도 아닌 조류(鳥類)로 환생하여 하늘 높이 날고 싶다고 할까. 이 땅의 어머니들은 마음 속의 불을 끄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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