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南美는 억울하다

조선일보
  • 강인선 논설위원
    입력 2007.05.20 22:21 | 수정 2007.11.30 17:10

    ▲강인선 논설위원
    남미는 죄가 없다. 이과수 폭포도 문제가 없다. 국민 세금으로 남미에 가서 ‘혁신 세미나’란 이름을 걸고 관광하려던 공직자들이 문제다. 그런데도 ‘외유성 남미 출장 파문’이 벌어지는 동안 ‘남미’만 억울하게 됐다.

    지난 주 일부 공기업 감사들과 서울의 구청장들, 그리고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들은 계획 또는 실행 중이던 남미 출장을 중도 포기하거나 취소했다. 이과수 폭포 관광이 포함된 출장 스케줄을 보고 분노한 여론의 기세에 놀라서였다.

    그 사이 남미 사람들이 들으면 속터질 이야기가 쏟아졌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남미까지 건너가 감사제도를 배우겠다니 생뚱맞다. 거꾸로 남미에서 우리나라에 배우러 와야 한다”고 했다. 한 야당의원은 “이과수 폭포에 혁신 세미나를 하기 위해 갔다니 웃음도 나오지 않는 희대의 사건이다”고 했다. 기획처의 한 당국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출장은 업무 일정이 빡빡한데, 남미 출장은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업무보다는 관광에 치중하기 때문에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했다.

    남미 사람들이 들으면 어땠을까. 남미는 자연경관이나 유적을 구경하러 가면 모를까, 보고 배울 것은 없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다. 여기저기서 “남미에 뭐 배울 게 있다고?” “왜 하필 남미냐!”는 표현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사람이 들었으면, ‘당신네 나라 공직자들의 기강해이나 잘 점검해 볼 일이지 왜 남의 나라를 깎아내리느냐’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에 별로 관심이 없다. 1960년대 농업이민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가 농업이민이 사라지면서 잊었다. 1980년대에는 남미 사회과학자들의 종속이론이 소개돼 다시 관심이 일었지만 역시 얼마 안가 식었다.

    그 후에는 남미를 ‘선진국 문턱에서 실패한 나라’, ‘포퓰리즘이 주는 폐해의 실상’, ‘잦은 외환위기로 구제금융을 단골로 신청하는 나라’ 등 ‘국정운영의 실패사례 교과서’쯤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남미에 30여개국이나 있으니 웬만한 개도국 실패사례는 다 있었다. 그래서 늘 ‘남미병(病)’에 걸리지 말고 남미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고 했다. 남미를 가리키며 ‘저렇게 되면 안된다’고 다짐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얻을 교훈만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혼란스러운 것도 서러운데 원치도 않는 반면교사 노릇까지 해야 하는 남미국가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것이다. 실제로 남미 사람들은 ‘반면교사’라는 말에 큰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과는 자연환경도 역사도 경제구조도 다른데 왜 남미를 반면교사로 삼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중남미 대륙은 전세계 면적의 약 15%를 차지한다. 대륙 전체가 식량·에너지·지하자원과 문화유산의 보고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처지는 나라가 많고 수출액도 그리 크지 않지만, 미국과 중국, 일본은 일찌감치 남미의 잠재력을 보고 외교를 강화했다. 미국은 올해를 ‘중남미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해’로 정했다. 장래 에너지 자원과 국가 간 유대라는 자산을 생각해서다.

    혹시라도 남미의 어떤 사람이 이번 외유성 출장 파문을 지켜봤다면, ‘1인당 국민소득 1만6500달러에 11위 경제대국’이라는 나라가 저런 수준인가 싶었을 것이다. 국민세금 쓰면서 관광 같은 출장 가는 공직자도 한심하고,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잠재력도 모르면서 단지 현재 못산다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하고 멋대로 떠드는 사회 분위기도 불쾌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브라질은 이미 한국을 앞섰다. 이러다가 남미국가들이 “한국, 너나 잘하라”며 반면교사 삼겠다고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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