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튼 ‘잉글리시 티처’를 아십니까?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7.05.11 22:16

    개화기의 영어 이야기
    김명배 지음 |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출판부 | 307쪽 | 1만5000원

    1816년, 라이라(Lyra)호를 비롯한 세 척의 영국 군함이 측량을 위해 조선 서해안 일대로 왔다. 9월 8일 배즐 홀(Hall) 함장 일행이 신안 앞바다의 한 섬에 내려 부녀자들이 모여 있는 골짜기로 가려 할 때 한 조선인이 홀의 팔을 꽉 잡아 눌렀다. 다급해진 홀은 “페이션스, 서(Patience, Sir·노형 참으시오)!”라고 외쳤다. 주민들은 한참 동안 “페이션스 서”라고 따라 했다. 그날 홀은 어두워질 때까지 언덕 위에서 주민들에게 영어 단어를 가르쳐 줬는데 발음을 곧잘 흉내냈다. 한국인에게 ‘영어교육’이 이뤄졌다는 최초의 기록이다.

    ▲1871년 미국 군함 콜로라도 호를 방문해 선물받은 맥주병과 미국 신문을 들고 있는 조선인. /국제영어대학원대학 제공

    개항 직후인 1881년, 16세 소년이었던 윤치호는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 사신으로 온 김옥균은 윤치호에게 “일본말만 배우지 말고 영어를 배워야 태서(서양) 문명을 직접 수입할 수 있다”고 권했다. 윤치호는 네덜란드 외교관에게 조선말을 가르쳐 주는 대신 영어를 배웠다. 매일같이 일기를 영어로 썼고, 길가에서 서양 사람만 보면 쫓아가서 “굿 모닝, 하우 두 유 두?”라면서 말을 붙여 사람들이 놀랐다. 중국 상하이로 가서는 헌책방에서 값싼 영문 소설책들을 수십 권 사서 통독하고 필요한 단어는 자꾸 암송하고 반복해서 썼다. 훗날 그는 영문법 책인 ‘영어문법첩경’(1911)을 저술했다. 이광수는 윤치호에 대해 “8개 국어를 하는 어학의 천재로서 영어는 서양인보다 더 잘 한다”고 술회했다.

    이 책은 1979년 6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월간영어’에 연재됐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10년 동안 개화기 영어교육사 자료를 수집했던 재야 학자다. ‘월간영어’가 언론통폐합 때 폐간된 뒤로 잊혀진 원고가 됐다가 국제영어대학원대학에 의해 뒤늦게 빛을 보게 됐다. 대학측은 저자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동명이인 50여 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고, 빠진 과월호를 찾기 위해 지하실 창고를 뒤졌다고 한다. 그런 곡절 끝에 출간된 이 책은, 귀중한 옛 자료들을 통해(그 중 많은 자료들은 현재 찾을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접하고 배우기 시작할 무렵 흥미진진한 이면의 발자취들을 되살리고 있다.

    1883년 서울 재동에 최초의 영어교육기관인 동문학교가 설립됐고, 1회 졸업생인 남궁억은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조차 ‘서학쟁이’라며 외면했으나 삯바느질하는 모친 슬하의 냉방에서 밤새도록 영어사전을 읽어 책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 유학생 제1호였던 유길준의 일화도 재미있다. 1892년 미국 전기 회사가 궁궐에서의 전기사업 영구 독점권을 헐값으로 얻으려고 교섭 문서를 보내자 조정에서 아무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쩔쩔맸다. 이것을 해독하고 ‘절대 불가’라는 회신까지 영어로 작성한 사람이 유폐 중에 있던 유길준이었고, 그는 이 공으로 유폐가 풀려 귀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저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라며 최근 불고 있는 조기 영어교육 열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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