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五山학교 100년

입력 2007.05.07 22:41

1909년 3월 순종 황제가 이토 히로부미 통감과 함께 전국 시찰에 나섰다. 두 사람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환영 나와야 했다. 순종과 이토는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을 표창하기 위해 평북 정주에 들렀다. 정주역에서 이들을 맞은 오산학교 학생과 교사들은 태극기만 들고 있었다. 일장기를 함께 들고 나왔던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일장기를 거뒀다.

▶‘민족학교’ 오산의 교주(校主) 이승훈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이승훈이 체포되자 1200여 학생들은 행렬을 이뤄 학교에서부터 읍내까지 진출하며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제(日帝)는 정주 경찰은 물론 평양 수비대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교장 조만식을 비롯한 많은 교사와 학생이 투옥되고, 교사(校舍)는 잿더미가 됐다.

▶오산학교가 15일 개교 100년을 맞는다. 자수성가한 실업가 남강(南岡) 이승훈은 1907년 평양 쾌재정(快哉亭)에서 “교육으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는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는 고향에 오산학교를 세웠다. 오산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큰 화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족교육의 요람 역할을 계속했다. 해방 후엔 반공(反共) 학생운동을 벌였고 많은 교사와 학생, 동문이 월남했다. 이들은 1953년 피란지 부산에 오산학교를 재건했다.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올라와 보광동에 오산학교의 새 터전을 마련했다.

▶“네 손이 솔갑고 힘도 크구나/ 불길도 만지고 돌도 주물러/ 새로운 누리를 짓고 말련다/ 네가 참 다섯메의 아이로구나.” 이광수가 지은 교가(校歌)처럼 오산학교는 민족의 일꾼을 숱하게 길러냈다. 시인 김억·김소월·백석, 화가 이중섭, 목사 주기철·한경직, 언론인 홍종인, 사상가 함석헌 등 문화계 인사들이 특히 많다. 의사 백인제, 독립운동가 김홍일도 배출했다. 세 차례에 걸쳐 9년간 교장을 역임한 조만식을 비롯해 신채호·이광수·염상섭·유영모 등이 이들을 가르쳤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평양고보를 그만두고 오산학교에 편입한 함석헌은 교장이 학생에게 존댓말을 하는 데 감격했다. 오산학교는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 오산학교 출신의 이미지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적은 보수에도 충실하게 일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민족 사랑과 기독 신앙을 하나로 엮은 남강 이승훈과 그 정신을 이은 오산학교 선생님들의 전인(全人)교육이 특히 그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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