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골목길에서 발견한 일본

    입력 : 2007.05.07 22:36 | 수정 : 2007.05.07 22:40

    ▲선우정 도쿄특파원
    도쿄 야나카(谷中) 골목길을 걷다가 어느 집 창문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현관 앞 나무 문패에 ‘오리우치(織內)’라는 성(姓)이 새겨진 걸 보니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마당도, 담장도 없었다. 가로·세로 1m 정도 창문에 걸쳐진 커튼 한장이 사생활 공간을 보호하는 유일한 차단막이었다.

    발길을 멈춘 것은 유리창과 커튼 사이 30㎝ 남짓한 공간 때문이었다. 리시안사스 세 송이, 청색 책상 전등, 일본 동자(童子) 인형, 곰 인형, 꽃 모양과 ‘spring’ 영문자를 자수한 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집안에선 볼 수 없는, 골목길 행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왜 남을 위해?” 한참 생각하다가 발길을 옮겼다.

    도쿄 가구라자카(神樂坂) 골목길에서 발길을 멈춘 곳은 ‘사사키(佐佐木)’란 문패가 붙은 가정집 현관 앞이었다. ‘백설공주’에서 등장하는 일곱난쟁이 인형 3개가 꽃화분을 안고 있었다. 담장 앞 가로 1m, 세로 40㎝ 정도 작은 화단 2곳에는 화사한 봄꽃들을 키웠다. 담장에는 약간의 덩굴도 붙여 놓았다. “일본 사람들은 참…” 감탄하다 고개를 숙이니 정교한 돌길이 보였다.

    한 뼘도 안 되는 돌 블록이 다닥다닥 길을 메우고 있었다. 길이 형성된 것이 에도(江戶)시대부터라니 100년 이상 밟히고 또 밟힌 골목길일 것이다. 하지만 돌의 이음새는 물론, 길과 담장의 이음 부분에도 틈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멘트로 덧칠한 흔적도 없었다.

    도쿄 쓰쿠다(佃)는 주로 가난한 노인들이 살았다. 검은 목조 주택이 마주한 골목길은 폭 1m 정도,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는 정도로 좁았다. 바닥은 잘 짜인 돌길이 아니라 시멘트였다. 하지만 역시 깨지고 벌어진 틈새를 찾기 힘들었다. 두껍게 쌓인 먼지도, 세월의 때도 없었다. 서민 마을 골목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불쾌한 냄새도 안 났다.

    먹고살기 힘든 처지에 골목길에 신경 쓸 주민이 있을까.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았다. 이곳을 산책할 때마다 누군가 골목을 쓸었고, 누군가 화단에서 꽃을 돌봤다.

    도쿄엔 큰길보다 골목길이 유명한 곳이 아주 많다. 종종 산책하는 야나카, 가구라자카, 쓰쿠다도 그렇다. 지역과 빈부 차이는 있지만 옛 도쿄를 느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등학생이 드나드는 문방구, 물건을 사는 구멍가게, 이들의 나무 간판과 출입구, 쇼케이스가 20~30년 전 그대로 손님을 맞는다. 새것으로 갈아치우기 앞서 매일 닦고 고치면서 남겨둔 것들이다. ‘낙후됐다’는 느낌보다 ‘향기롭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런 실존 공간에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몰리고 있다. 롯폰기(六本木), 마루노우치(丸の內) 같은 대규모 개발 공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왜 롯폰기힐스에 안 가고 여기 왔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훨씬 더 일본답다”고 말한다.

    이런 일본의 원형을 보존한 것은 주민이다. 개발 공간이 기업과 정부 작품이라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쿄의 공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만들고 있다. 자신은 볼 수 없는 창문 공간을 자수로 장식하는 오리우치 가족, 담장 밖 화단을 꽃으로 메우는 사사키 가족, 매일 골목길을 청소하는 수많은 가족들이 날마다 도쿄를 조금씩 진보시키는 것이다.

    뜻밖에 도쿄 골목길에서 일본을 발견하고 있다. 작고 섬세하지만,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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