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TK 대부

조선일보
  • 조용헌
    입력 2007.04.27 23:00

    조용헌
    ‘대구·경북’ 지역을 지칭하는 영문 이니셜인 ‘TK’는 한국 현대사에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빛은 무엇인가. 박정희 대통령 이래로 경제 개발시대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대부분 TK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TK들은 스스로를 경제 개발시대의 ‘국가 경영 집단’으로 불렀다. 그림자는 배타적인 인사 독점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모두 TK다. 대구의 특산품은 사과가 아니라 바로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대략 30년 동안 이 지역 출신들이 국가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하였다.

    26일 별세한 신현확(申鉉碻) 전 총리는 TK가 지닌 이러한 빛과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붙은 그의 별명이 ‘TK 대부’ 아닌가. 신현확은 지난 30년 동안 영남 인맥의 좌장이었다. 일제시대 도쿄의 상무성 관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관료사회의 핵심에 있었다. 그의 관상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얼굴 전체적으로 풍기는 신중함과 양미간이 넓은 데서 오는 포용력, 그리고 눈빛에서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관상이다. 짐작하건대 좋은 관상도 윗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경북 칠곡 출신인 신현확이 TK 대부에 이르기까지는 같은 칠곡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에서 총리까지 지낸 장택상(張澤相·1893~1969)의 추천도 한몫 했다고 한다. 신현확이 ‘TK 대부’였다면 장택상은 ‘TK 원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유당 때만 하더라도 경상도 출신들이 관료사회에 많이 포진하지는 못하였다. 해방 이후 영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총리가 된 사람이 칠곡의 만석꾼 아들이었던 장택상이다. 장택상이 자유당 때 총리가 된 이후 안동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찾아가 서애 유성룡의 위패 앞에 분향하면서 “대감 이후로 영남에서 정승이 나오기는 제가 처음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은 유명한 일화이다. 조선조 때 영남은 야당인 남인을 하였기 때문에 약 200년 동안 높은 벼슬을 할 수 없었다. 역사를 길게 보면 그 200년 벼슬 못한 한을 풀어준 것이 ‘TK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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