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 얼굴에 피가 튀는 듯

조선일보
  • 김수혜 기자
    입력 2007.04.20 23:01 | 수정 2007.04.21 07:24

    비잔티움 연대기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 남경태 옮김
    바다 | 전 3권 | 각권 2만8000원~3만원

    로마문명 계승한 비잔티움 ‘1000년 제국’의 추억
    황제·환관 여걸·탕녀·야만인…
    하나로 뒤엉킨 제국 흥망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제국을 주무른 ‘곡예사의 딸’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엔 ‘비잔티움 연대기’다. 시오노 나나미(70)의 글에선 로마군이 갈리아 들판과 누미디아의 사막을 진격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제국 로마는 그러나 다섯 현제(賢帝)가 차례로 등극한 서기 2세기를 정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한다. 영국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77)가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는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고 늙은 제국의 무게 중심을 동쪽으로 옮겼다.

    고트족과 강화하고 내치(內治)를 다진 테오도시우스가 서거한 뒤 제국은 동과 서로 갈라졌다. 황제가 숨진 395년 1월 17일 고대(古代)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됐다고 사가들은 말한다.

    이 책은 로마의 동쪽 절반을 차지한 비잔티움 제국의 이야기다. 476년 게르만족(族)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무력으로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킨 뒤에도, 비잔티움 제국은 1000년을 더 존속했다.

    황제와 장군, 모사와 환관, 여걸과 탕녀, 귀족과 천출, 제국 군대와 야만인이 한데 뒤엉켜 제국의 흥망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힘을 겨룬 그 1000년 세월을 저자는 간명하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간추린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동방정교회 세례당에 있는 5세기 모자이크다.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묘사했다. 바다 출판사 제공

    1권은 콘스탄티노플 천도부터 서기 800년 샤를마뉴 대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즉위까지, 2권은 바실리우스 2세 불가록토누스의 치세(976~1025년)를 거쳐 비잔티움이 셀주크 투르크 제국에 대패하는 만지케르트 전투(1071년)까지를 다룬다. 3권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흥성하는 가운데 속절없이 쇠락해가는 대제국의 마지막 두 세기를 그린다.

    제국의 성쇠를 시간 순으로 서술하는 평이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수세기 전 지구의 반대편에 살다 간 권력자들이 불현듯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저자의 문장에 있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는 저자의 말은 겸손이자 자부다. 그는 사회 저변의 변화를 따지는 대신, 역사의 전면에서 활약한 사람들의 부침(浮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웅의 입김이 훅 끼치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읽는 사람 얼굴에 피가 튀는 듯한 대목도 있다.

    제국의 부흥을 이룬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원래 황실경비대장의 조카에 불과했다. 신심 깊은 선제 아나스타시우스는 죽음을 앞두고 “내일 아침 황제의 침실에 맨먼저 들어오는 이에게 제위를 물려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1권 308쪽). 다음날 아침 경비대장 유스티누스가 황제의 잠을 깨웠다.

    일반 병졸로 출발해 ‘신의 뜻’으로 일약 황제가 된 이 사나이가 바로 대제의 삼촌이었다. 삼촌 밑에서 경비대 장교로 복무하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삼촌이 서거한 뒤 나이 마흔 다섯에 즉위해 38년간 제국을 다스렸다. 그가 평생 사랑한 황후 테오도라는 곡예사의 딸로, 한때 고급 창부로 이름을 날렸다. 532년 폭동이 일어났다. 퇴각 준비를 하는 황제에게 그녀가 일갈했다. “무릇 태어난 자는 언젠가 죽게 마련입니다. 어찌 황제가 두려움에 몸을 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죽는 순간까지 황후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폐하는 떠나고 싶으면 얼마든지 떠나십시오.” (1권327쪽)

    동방 천도를 감행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황제는 폭동을 진압했고, 로마법을 집대성했으며, 도로와 세제를 정비하고, 야만족의 손에서 이탈리아를 수복했다. 그러면서도 이 현제(賢帝)는 평생 충성한 불세출의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시샘해 군 지휘권을 빼앗고 식솔을 해산시키는 어두운 면모를 보인다.

    이후 다시 한번 제국의 영화를 이루는 바실리우스 2세 불가록토누스는 절치부심의 전범을 보여준다. 18세에 즉위한 그는 치세 첫 9년간 막강한 시종장 밑에서 숨을 죽이고 지낸다. 시종장을 숙청한 뒤에는 반란을 진압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반란군 우두머리가 전투중 너무 흥분한 나머지 졸도해 사망하는 바람에 그는 위기를 넘긴다(2권421쪽).

    바실리우스 2세는 치세 초기 불가리아 군에게 대패한 다음 평생 설욕을 별렀다. 그는 1014년 클리디온 협곡에서 불가리아 군을 박살내 30년간 벼른 꿈을 이룬다. 그는 포로 100명을 골라 단 한 명의 한 쪽 눈만 남기고 모든 포로를 눈 멀게 했다. 그리고 한쪽 눈이 보이는 포로에게 눈 먼 동료들을 데리고 불가리아인 본영에 돌아가라고 했다(2권 425쪽).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고통스럽다. 1071년 비잔티움 제국의 로마누스 황제는 만지케르트 초원에서 셀주크 투르크 군과 맞닥뜨린다. 제국군이 초원을 가로질러 전진하자 셀주크 군은 초승달 진영으로 후퇴만 했다. 이상하다는 낌새를 챈 로마누스 황제가 퇴각 명령을 내린 순간,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반격 명령을 내렸다. 황제는 술탄의 포로가 됐다. 강화조약을 맺고 간신히 고국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쿠데타였다. 로마누스는 눈을 뽑힌 채 나귀에 실려 압송되다 숨을 거둔다.

    저자는 호흡이 빠른 문장을 구사한다. 숨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에 섬찟해진다. 만지케르트 패전 후인 1094년, 알렉시우스 콤네누스 황제는 우르바누스 교황에게 사절을 보내 “이교도가 코 앞까지 왔으니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교황은 “이 참에 성전(聖戰)을 시작하겠다”고 나선다. 알렉시우스 콤네누스가 그제야 “아뿔사” 했으나 이미 늦었다. 1095~1198년 비잔티움 제국은 서방에서 몰려온 1~4차 십자군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 유럽 기사들이 이교도 땅으로 진격하는 대신 비잔티움 영토를 유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무르가 이끄는 몽골 군대와 술탄 메메드가 이끄는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차례로 뽀얀 먼지를 피우며 건너왔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 10만 대군의 손에 떨어졌다.

    저자는 서문에 “우리 문명은 비잔티움 제국에 큰 빚을 지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썼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계승자로서 비잔티움을 복권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더 읽을 만한 책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겐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지음·까치), ‘비잔틴 제국의 역사(워렌 트레드골드 지음·가람기획)’, ‘비잔틴 제국(미셀 카플란 지음·시공사)’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영문 책으로는 ‘옥스포드 비잔티움 제국사(The Oxford History of Byzantium)’(시릴 망고 지음), ‘비잔티움과 초기 이슬람 정복(Byzantium and the Early Islamic Conquests)’ (월터 카이기 지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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