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 원래 지명은 바랑산”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7.04.16 00:15 | 수정 2007.04.16 04:38

    국사봉→國士峰, 큰배미→大夜味 등 일제시대때 엉터리로…
    조선지지자료 강원도 부문 정리 원래 이름 추적해 신종원 교수 책펴내

    발왕산(發旺山)? 소나기재? 국사봉(國士峰)? 대야미(大夜味)? 이런 지명은 어떻게 생겨 났을까.

    일제시대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원래 뜻과 멀어지게 됐던 전국 지명의 ‘원래 이름’을 추적한 자료와 연구 결과가 나왔다. 15일 신종원(辛鍾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세기 초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과 연구 성과 등을 묶어 ‘강원도 땅이름의 참모습’(경인문화사·858쪽)을 냈다. 희귀 필사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의 강원도 부분을 모두 정리·편집하고 해제를 붙인 책이다.

    신 교수가 분석한 ‘조선지지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 도서번호 ‘古(고)2703’인 54책 분량의 방대한 자료다. 극소수 연구자들 외에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신 교수는 “이 자료를 보고 눈을 번쩍 뜰 수 밖에 없었다”면서, “한자로 바꿔놓은 지명 밑에 원래 이름을 한글로 고스란히 적어놓았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자료는 1911년 총독부가 전국 지명을 조사해 작성한 초고로서 전국의 마을 이름은 물론, 보(洑)와 주막, 금석문, 성곽, 당간지주, 황장목, 고분, 고인돌, 솟대, 국사당 등의 이름과 정보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문에 착간(錯簡)과 오류, 일본식 약자·속자와 흘려 쓴 글씨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정리해야 했다. 지자체나 학회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강원대 역사교육과 제자들이 자원봉사로 참여, 4년 만에 일을 끝냈다.

    강원도만 해도 어이없게 왜곡돼버린 지명들이 많았다. 평창의 발왕산(發旺山)은 일부에서 ‘왕(王)’을 ‘왕(旺)’으로 고친 것이라며 논란을 제기하고 있지만 ‘조선지지자료’의 한글 이름은 ‘바랑산’이었다. ‘바람’이 ‘바랑’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되지만‘왕’과는 관련이 없다. 영월의 ‘소나기재’는 이 자료에서 ‘소�기�’ 였고 이걸 ‘금출치(金出峙)’라는 한자로 바꿔 놓았다. 쇠가 나오는 고개라는 뜻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전혀 새로운 땅이름 풀이가 만들어진다. ‘푸른 소나무가 가득한 고개여서 솔안이재였고 후에 소나기재가 됐다’, ‘단종 임금이 유배가다 이 고개를 넘는데 하늘도 서러워 많은 소나기를 내렸다’는 식이다.

    강원도는 물론 전국에 무수히 많은 ‘국사봉’이나 ‘국수봉’ 같은 지명은 토속 신앙인 국사당(國師堂)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지만 ‘國士(국사)’ ‘國思(국사)’로 표기된 탓에 ‘선비들이 망국의 울분을 토로했던 곳’이라는 엉뚱한 해설이 생기기 일쑤다. 정선의 ‘�미’는 논배미(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구역)가 있다는 뜻이었지만 ‘배미’의 ‘뱀’은 ‘야(夜)’로, ‘미’는 ‘미(味)’로 바뀌어 ‘야미(夜味)’가 됐는데, 이는 원래 ‘큰배미’였던 경기 군포의 지명이 ‘대야미(大夜味)’로 바뀐 것과 같은 원리다.

    신 교수는 “강원도편을 간신히 내놓았다. 이젠 다른 지역도 빨리 정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몇몇 학자들이 경기·충북 편 정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광복 후 지명 바로잡기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1964~1986)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조선지지자료’를 활용하지는 못했다.
    1911년 우리나라 전국 지명의 원래 한글 이름이 그대로 담긴 <조선지지자료>를 발굴, 그중 강원도편을 정리 편집해 <강원도 땅이름의 참모습>(경인문화사)으로 출간한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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