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노예무역 참회

조선일보
  • 신효섭 논설위원
    입력 2007.03.26 22:45 | 수정 2007.03.27 09:31

    “우리는 백인 노예상들을 ‘음웨네 푸토(사람 잡아먹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들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납치했다고 생각했다. 노예상들이 먹는 적포도주와 치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와 뇌로 만들었을 거라고 믿었다.” 미국의 흑인노예 구스타부스 바사는 1789년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열 살이던 1756년 나이지리아에서 영국 노예상에 붙잡혀 갔다.

    ▶바사가 자유를 잃게 됐을 즈음 영국인 존 뉴턴은 6년여 노예상 일을 접었다. 그는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의 해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맥주, 사과술과 맞바꾼 노예들을 카리브해 농장에 팔았다. 몇 년 뒤 목사가 된 뉴턴은 과거를 깊이 뉘우쳤다. 그러곤 1779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작사했다. 그 유명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영국인의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1562년 존 호킨스가 시작했다. 시에라리온에 배 세 척을 끌고 가 잡아들인 흑인 원주민들을 카리브해의 스페인 정착민들에게 팔아 넘겼다. 그는 나중에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공로로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이후 300여 년 동안 영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붙잡아 배에 태워 미국과 남미로 끌고간 흑인만 300만명에 이르렀다.

    ▶노예상들은 4~6개월씩 걸리는 항해 중에 흑인들에게 주로 땅콩을 먹였다. 땅콩은 세네갈 감비아 같은 서부 아프리카에 널려 있었다. 값이 싸면서도 열량은 많아 노예들의 허기를 때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지금도 보존돼 있는 노예선들에는 배 밑바닥에 갇혀 있던 노예들에게 땅콩을 굴려 보내주기 위해 팠던 홈들이 남아 있다. 영국의 노예무역은 1807년 노예거래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불법이 됐다. 그러나 밀매매는 한참 계속됐고 1870년대가 돼서야 끝났다.

    ▶지난 주말 런던 빅토리아공원에서 양손이 쇠사슬에 묶인 백인 6명이 한 흑인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씻을 수 없는 백인 선조들의 죄를 깊이 사죄합니다.” 흑인 여자는 백인들을 껴안고 “고맙다”며 용서했다. 노예거래금지법 제정 200년을 기념해 성공회가 주도한 노예무역 참회행사였다. 작년 6월엔 최초의 노예상 존 호킨스의 후손 앤드루 호킨스가 아프리카를 찾아가 감비아 사람 2만5000명 앞에 무릎 꿇고 선조의 잘못을 대신 빌었다. 불과 몇 십 년 전 일도 막무가내 아니라고 버티는 우리의 이웃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들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