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

조선일보
  • 강천석 주필
    입력 2007.03.15 18:53 | 수정 2007.03.15 19:57

    강천석 주필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문제를 시급한 순서대로, 중요한 차례대로 정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돈과 시간과 관심을 더 급하고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쏟을 수 있다. 이런 일의 순서를 그르치면 개인도, 회사도, 나라도 거덜이 나게 된다. 편집증(偏執症)이란 무슨 망상(妄想)에 씌었는지 국가적, 사회적, 상식적 우선 순위와 어긋난 자기만의 우선 순위를 고집하는 병이다.

     어제 아침 신문을 훑으면 나랏일의 우선 순위를 거꾸로 뒤집어서 빚어진 대한민국의 문제가 에누리 없이 드러나 있다. 신문 머리에는 서울 목동 35평 아파트의 보유세가 작년 148만원에서 올해에는 444만원으로, 경기도 과천의 27평 아파트는 작년 122만원에서 올해에는 348만원으로 3배 가량 뛰리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신문 뒤편에는 우리의 청년실업률이 7.9%라고 하지만 직업 구하는 걸 아예 포기해 버린 사람과 독서실에서 취직시험 공부에 파묻혀 있는 사람을 합하면 청년실업률이 20%에 육박한다는 글이 나와 있다. 지난 6년 사이 청년층 일자리가 무려 53만개나 줄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대통령의 스승이 위원장으로 있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올해 사업계획이 실려 있다. 6ㆍ25를 전후해서 일어난 대한민국 국군ㆍ경찰ㆍ우익단체ㆍ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7533건과 좌익과 북한군에 의한 1485건을 함께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예산 119억원과 직원 190명으론 턱없이 부족하니 예산도 더 받고 인력도 130여명쯤 더 늘려야겠다는 말도 붙어 있다.

     겉보기엔 세금ㆍ경제운용ㆍ역사 바꿔쓰기라는 각각 다른 영역에 속한 듯하지만 사실은 이 모두가 좌파적(左派的) 경제관과 역사관이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독버섯들이다.

     이 정권은 좌파정권이란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부인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서 ‘우리는 좌파’라는 자백(自白)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접 증거와 정황(情況) 증거를 들이대는 수밖에 없다. 좌파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란 실례(實例)를 먼저 들고, 이 정권이 거기에 들어맞는지를 견주어봐야 한다.

     좌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신들이 천둥 벽력이 치는 날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타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인 듯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어제의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질 턱이 없다. 전통이나 예의범절이나 미풍양속도 구닥다리들의 묵은 생각으로 치부해 버린다.

     좌파들은 대개가 세계 인류, 제3세계, 아시아, 조국과 동포, 이웃, 내 가족 순(順)으로 사랑한다는 식의 위선(僞善)을 떠는 게 몸에 배어 있다. 가까운 북한 동포의 인권은 피해가면서 입만 열면 멀고 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사람의 인권을 들먹이는 것도 이런 위선에서다.

     좌파들 입에선 일이 틀어지는 순간 으레 남의 탓부터 튀어나온다. 이 점에선 한국 좌파들은 원조(元祖) 좌파 마르크스의 충성스러운 후계자들이다.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자본론을 집필하는 동안 세 아이를 폐렴ㆍ기관지염ㆍ결핵으로 잃었다. 장의사들이 외상을 거절하는 바람에 2 파운드짜리 관(棺)조차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 억장이 무너진 마르크스는 이 모든 불행을 자본주의의 죄악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마르크스의 수입은 당시 영국 중류층 수입의 3배 정도였다는 것이다. 불행의 원인은 가난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경영능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다.

     철학자ㆍ사회학자ㆍ국제정치학자ㆍ경제학자를 겸했던 레이몽 아롱이라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프랑스 학자가 있었다. 아롱의 좌파 식별법(識別法)은 명쾌하다. ‘정직하면서도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아롱이 지금 살아 한국을 들여다봤더라면 ‘정직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 인간만이 좌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더 간편한 식별법을 내놓았을지 모른다.</P>

     이 정권의 죄(罪)는 좌파라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나쁘면서 정직하지도 않은 좌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죄다. 올해 우리 일 가운데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은, 정직하지 않으면서 머리까지 나쁜 사람들을 대신할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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