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중도(中道)’의 전성시대다. 곳곳에서 중도가 넘쳐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사회운동세력은 물론, 이른바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방안을 논의하는 지식인 사회에도 중도는 상한가(上限價)를 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지난 10년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좌파에서 두드러진다.
정치인들이 중도로 몰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선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가운데 중도 성향을 지닌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불만을 지닌 현 정권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도 중간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다시 집권하려면 ‘비빔밥 중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유명 소설가도 이런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도론은 선거전략이나 구호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다르다. 나라의 긴 방향을 탐구하는 지식인이라면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세계관과 역사관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좌파 지식인들의 중도론은 그 내용과 배경을 면밀히 검토해 볼 만하다.
좌파 지식인의 중도론 중 대표적인 것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변혁적 중도주의’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그동안 흑백논리를 내세워 소모적 논쟁을 벌여 왔다며, 양자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중도적 시각을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남북한 관계’ 등 남(南)·남(南)갈등을 불러일으킨 첨예한 문제들에 중도적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백 교수는 혁명은 아니라도 여전히 ‘변혁’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가 최근 내놓은 ‘강한 중도’론도 관심을 끈다. 선명한 좌파 이론가였던 그는 갑자기 “좌·우파가 축적한 지혜를 합쳐야 지구화의 도전에 맞서서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홍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파의 급진적 진정성이나 우파의 경직된 정체성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통합적 해결력을 보이는 ‘강한 중도’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중도론은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던 좌파 지식인들이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정통성’을 인정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부정하지 않으며, ‘선진화’와 ‘통합’을 미래 방향으로 설정하는 점에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곰곰 따져 보면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엄밀히 말해 좌와 우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중도’는 있을 수 없다. 중도는 결국 사상적 기반이 어디냐에 따라 중도좌(中道左) 아니면 중도우(中道右)다. 중도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그럴듯한 형용사를 붙이는 중도론은 수사학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념이나 정책으로 존립하기는 어렵다. 백낙청 교수를 따르는 소장·중견 학자들이 최근 ‘연대·혁신·개방’을 내놓았지만, 다른 좌파 학자들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다” “뉴라이트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받았다.
좌파 중도론자들은 이념과 정책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입장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남북한 관계에 대한 인식차 해소도 ‘어물어물’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로 대표되는 중도우파는 ‘공동체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부문별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좌파 중도론자들이 중도우파가 대화와 상생(相生)의 맞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중도좌파가 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