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파원칼럼] 피해자는 과거를 즐길 수 없다
  • 선우정 도쿄특파원 su@chosun.com
    입력 : 2007.03.14 18:42 / 수정 : 2007.03.14 18:44
    • 선우정 도쿄특파원
    • “일본이 북한의 납치문제를 주장하려면 일본이 옛날에 다른 나라에 끼친 피해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한국은) 모두 일본이었으니까요. 같은 대우를 받았고….”

      지난 1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후지TV의 아침 토론 프로그램에서 사회자 질문에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이 뱉은 대답이다. 엉뚱한 말 같지만 ‘한국은 당시 일본이었는데 한국 여자가 일본군 위안부 노릇 한 게 왜 다른 나라에 대한 가해냐’는 일본의 일부 시각이 진하게 배어 있다.

      12일 아사히TV 저녁 토론 프로그램에서 같은 의문이 제기됐다. 북한의 납치 피해를 세상에 호소하려면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토론자 한 명이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지 않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는 얘기다. 이 한마디로 일본군 위안부 토론은 끝났다. “왜 거짓이냐”는 반문도 없었다.

      14일 발행 부수 6위인 산케이(産經)신문은 “한국이 또 위안부 문제로 흥분 상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서울발(發)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 언론의 일본군 위안부 비판에 대해 “연일 일본 비판을 전개하면서 ‘민족적 쾌감’을 즐기고 있다”고 표현했다.

      한국에선 위안부가 ‘민족적 영웅’이며, 한국이 일본의 강제 연행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도적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란 문장도 있었다.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었다. “위안부 문제의 국제화 배경에 ‘북한의 그림자’가 있다”는 익명의 소식통 발언과 함께 “북한에 가장 비판적인 조선일보조차 일본 비난에서는 독재국가 북한의 논리에 간단히 동조해 버린다”고 썼다.

      이 기사가 예로 든 것이 지난 7일 이 난에 실린 ‘나카야마 부부의 경우’란 특파원 칼럼이다. 남편은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 납치 범죄를 부정하는 데 앞장서고, 아내는 북한의 납치 범죄를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서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이 신문은 “과거사를 들춰내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비판을 모면하려는 북한 당국과 친북세력의 상투 수법”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북한의 상투 수법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일본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작은 모임이 열렸다.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中央)대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강연회였다. 참여자는 150여명 정도. 요시미 교수가 배포한 자료에는 일본군의 위안부 납치 범죄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이 자료를 읽은 참가자 중 한 명이 “정치가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무지(無知) 때문이 아니냐. 이런 자료를 정치가들에게 읽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는 “(알고 모르고를 떠나) 정치가들이 과거의 치부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공부를 안 해 무지해서 그런다면 어쩔 수 없다. 일본 언론을 통해 “북한 동조”라고 하든, “위안부는 모두 일본인”이라고 하든 그건 일본 언론과 지식인의 수준 문제에 국한될 뿐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비판할 때 우리가 ‘민족적 쾌감을 즐긴다’는 글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나라 잃고 여성을 군대 성노예로 빼앗긴 한국의 과거를 통해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민족적 쾌감’을 즐길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럴 수 없다. 피해자는 과거를 즐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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