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구다라니' 세계최고 목판인쇄물 아닐수도

조선일보
  • 신형준기자
    입력 2007.03.09 00:56 | 수정 2007.03.09 07:27

    석가탑 重修記 판독결과 “11세기 탑 보수때 넣어”
    사실 판명땐 300년이나 ‘후퇴’…역사학계 초긴장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로 국사 교과서에 기록돼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신라 때(8세기 초~751년 이전)가 아닌 고려 초(11세기 초반) 것이라는 ‘반증 자료’가 나왔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 2층 사리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석가탑 중수기(重修記)’가 최근 판독되면서 이 불경이 11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최고 목판 인쇄물은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서기 770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관련 학계는 초긴장하고 있다.

    석가탑 중수기는 ‘태평 4년(1024년) 3월 불국사 무구정광탑 중수기’로 시작되는데, 여기에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또 다른) 무구정광다라니경 (두 점)을 탑 안에 넣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보협인다라니경, 사리 여러 점, 각종 향(香) 수십 점, 구리에 금 도금한 ○○(글자 쓴 부분이 부식됨), 금으로 만든 병 등도 넣었다고 적혀 있다. 이 중 보협인다라니경은 최근 판독된 ‘묵서지편’에 석가탑 중수기와 함께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각종 향이나 금동제품 등은 1966년 석가탑에서 출토됐다.

    ▲서기 1024년(고려 현종 15년) 석가탑을 보수하면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2점(사진 점선 안)을 탑 안에 넣었음을 기록한‘석가탑 중수기(重修記)’.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석가탑 중수기는 발견 당시 110여장에 이르는 종이가 떡처럼 뭉쳐 있어서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 처리를 시도하다 ‘중수기’라는 표현을 찾아내고는 작업을 멈췄다. 그러나 2005년 중수기 존재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박물관은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묵서지편의 본격 판독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석가탑은 창건(751년) 이후 중수(重修)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판독작업은 우리 역사를 후퇴시킬 수도 있는 민감한 작업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최근 “중수기 자체는 아직 공개할 수는 없다”며 판독문만을 본지에 독점 제공했다. 본지는 김언종 고려대 교수(한문학)에게 해석을 의뢰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오영선 학예연구사는 “탑 창건 초기에 넣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고려 때 보수하면서 ‘도로 집어 넣었다’는 사실을 적었을 수도 있다”며 “신라 것일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금동제사리외함이나 은제사리합 등 석가탑 창건 때 넣은 것이 분명한 사리 유물은 중수기에 적혀 있지 않다”며 “중수기에 적힌 유물은 고려 것으로 보는 편이 논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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