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젊은이도 탈모에 떤다

입력 2007.03.04 10:06 | 수정 2007.03.04 10:12

인터넷 동호회에 3만명 넘게 몰려 고민 및 치료법 등 의견 나눠
<이 기사는 주간조선 [1944호] 에 게재되었습니다>



“스무 살부터 진행된 탈모로 가운데 머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처음 4년간 몇 백만원씩 들여 좋다는 약을 써 봤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체념한 후, 가발을 쓴 지 4년이 되어갑니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붙었는데 6개월간 신임 교육을 받아야 한다네요. 가발을 쓰고 갈 배짱도, 맨머리로 생활할 자신도 없습니다. 어렵게 붙었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딱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난 1월 20일 인터넷 동호회 ‘삼탈모(cafe.daum.net/talmo119)’ 익명 게시판에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삼탈모’는 ‘30대 탈모인들의 모임’의 줄임말. 2005년 개설, 2월 23일 현재 3만754명의 회원을 거느린 탈모 관련 커뮤니티다. 자신을 ‘28세의 젊은이’라고 밝힌 이 게시자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 아래로는 “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류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20~30대 젊은이의 고민은 이외에도 무수하다. “마빡이를 보고도 웃을 수 없는 심정을 아느냐”는 투정은 약과다. “하루에 수십, 수백 번 거울을 들여다봐도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며 가슴을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외모 때문에 말도 못 꺼내는 내 자신이 서럽다”는 이도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며 “좁은 이 나라에서 외모는 왜 그렇게 따지느냐”고 울분을 토해놓은 글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5월 대한피부과학회는 탈모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참가자 중 탈모로 고민하고 있다고 응답한 남성은 284명. 이 중 85%는 “탈모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신경이 쓰인다”고 응답했으며 82%는 “탈모로 인해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답변했다. “탈모 때문에 주변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거나 놀림의 대상이 돼 신경 쓰인다”는 응답도 37%에 이르렀다.






▲ 모발이식 시술 장면



탈모(脫毛)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탈모 진행 시기가 빨라지고 여성 탈모 현상이 늘어나는 등 탈모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의 그늘 역시 깊어졌다. ‘무한경쟁’을 표방하는 현대사회가 구성원에게 탈모를 촉진시키는 가장 큰 원인인 스트레스를 과중하게 떠안기면서 탈모 시장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일부 견해도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 2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연세모발이식센터 진료실을 찾았다. 때마침 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진료 예약을 한 상태였다. 병원 측의 양해를 구해 문진(問診) 과정을 참관했다.

“언제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나요?” “서른 살 때부터요.” “하루에 몇 개 정도 빠지나요?” “80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탈모가 진행되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머리카락이 조금씩 가늘어지고 부드러워지더니 힘없이 가라앉더라고요. 이마선도 조금씩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고….”

정재헌 원장은 탈모 진행 단계를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가족 중 탈모가 진행된 이가 있는지, 탈모 치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했다. 환자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쓸어 올려 육안으로 살펴보고 고배율 더머 비디오 스코프(derma videoscope)를 활용, 환자의 모낭 상태를 관찰한 정 원장이 내린 진단 결과는 ‘3단계 탈모’. 머리숱의 15% 정도 탈모가 진행된 상태였다.

“3단계부터는 모발 이식시술이 가능합니다. 단,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요. 환자의 경우 약물 치료를 통해 경과를 좀더 지켜본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남성은 “2년 전 한 달 정도 탈모치료제를 복용했는데 매일 먹기가 귀찮아 그만둔 적이 있다”며 “그 동안 탈모에 효과 있다는 샴푸를 썼는데 이제부터라도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탈모 치료와 관련, 의학적 효능이 입증된 방식은 약물치료와 모발이식술이다.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경우, 현재 국내 병원에서 처방되는 것은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 계열의 ‘먹는 약’과 미녹시딜(minoxidil) 계열의 ‘바르는 약’ 등 두 가지. 판단 기준은 탈모 치료 선진국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여부다. 피나스테리드 제제는 남성형 탈모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의 농도를 낮추어 탈모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정 연령(20~40대)의 남성 환자에게만 사용이 가능한 전문의약품으로 한국MSD(미국 머크사의 한국지사)의 프로페시아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 미녹시딜 제제는 혈관이완을 통한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활동이 중지된 모낭을 자극하고 축소된 모낭 크기를 복원시키는 효과가 밝혀지면서 탈모 치료제로 용도가 바뀐 경우. 1988년 미국 파마시아앤드업존사가 처음 관련 제품을 개발했으며, 현재는 몇몇 국내 제약사에 의해 마이녹실(현대제약), 목시딜(한미약품), 볼드민(중외제약) 등 다양한 이름의 제제로 시판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된 탈모 치료 방식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병원을 찾아 탈모를 치료하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한피부과학회 설문조사에서도 탈모 증세를 가진 응답자 중 단 18%만이 “탈모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변했으며 “탈모 현상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샴푸 등 비의약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4%나 됐다.




▲ 최근 탈모로 고민하는 20~30대 젊은이가 늘고 있다.


“흔히 탈모를 머리가 빠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빠지는 게 아니라 가늘어지는 거예요. 물론 예외는 있죠. 출산 직후 혹은 과로로 인한 탈모는 ‘휴지기 탈모’라는 명칭이 따로 있습니다.

그 외의 탈모는 약 90%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남성형 탈모입니다. 탈모 증세를 보이는 여성의 상당수도 사실은 남성형 탈모를 겪고 있고요.” 정재헌 원장은 탈모를 둘러싼 일반인의 ‘상식’ 중 잘못된 것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유독 탈모에 관한 민간요법이 횡행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발달된 인터넷 환경도 탈모에 대한 잘못된 속설 전파에 한몫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시각이다. 우태하-한승경 피부과 진상현 진료부장(피부과 전문의)은 “탈모 치료제의 부작용을 확대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데, 인터넷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프로페시아의 경우, 극히 일부 복용자에 한해 성기능 저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상실험에서 밀가루와 프로페시아를 똑같이 투여해 보면 양 그룹 간 차이가 거의 없어요. 사실상 심리적 요인이 큰 거죠. 그런데도 약을 처방할 때 부작용 부분을 미리 말씀 드리면 대부분의 환자가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정재헌 원장 역시 “부작용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탈모 환자에게 프로페시아 복용을 권하면 마치 독약 보듯 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탈모 관련 상품시장은 ‘○○가 탈모에 좋더라’는 일명 ‘카더라 통신’을 타고 슬금슬금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쥐눈이콩과 다시마, 하수오, 검은깨, 산수유 등을 넣어 만들었다는 선식이 유행하는가 하면 선천적으로 대머리가 없는 인디언의 민간요법으로 제조했다는 모발용 비누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한다. 각종 식물 성분 추출물이 들어 있다는 탈모 치료용 수입 샴푸는 300㎖가 채 안 되는 용기 1개당 4만~5만원을 호가하지만 탈모인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효능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탈모 치료법도 버젓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측백엽, 귤 껍질, 알로에, 생강 등을 말려 소주를 붓고 묵혔다가 사용하는 일명 ‘자연양모(養毛)제’ 제조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탈모 관련 사이트에는 “양파즙을 두피에 바르고 20분 정도 후에 미지근한 물에 감으면 건강한 머릿결이 되고 두피가 다시 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정말 효과가 있나요?”와 같은 질문이 수시로 올라온다.

탈모 제품을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탈모 시장에서 처방 의약품과 수술 등 정식 경로를 통한 치료 부문은 전체 시장의 5~10%에 불과하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탈모 환자가 많은 것에 대해 경기 부천 백피부과 박지용 원장은 “병원을 찾는 탈모 환자를 상담해 보면 대개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막다른 골목에서 병원 치료를 택한 사람들”이라며 “탈모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병원 진료를 꺼리는 데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쉽고 간편한 자가진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판 중인 탈모 치료제


박 원장은 “그러나 탈모는 남성형 탈모 이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각각의 원인에 따라 치료법 역시 달라지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 전문의에게 정확한 탈모의 원인을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상현 과장 역시 “흔히 자신의 탈모 증세를 ‘스트레스성 탈모’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가곤 하는데 스트레스는 모든 탈모의 원인이고 면밀하게 진단했을 때 치료가 필요한 남성형 탈모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0일, 탈모와 관련된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다. 저파장 레이저를 이용, 탈모 부위의 모발 재생을 촉진한다는 일명 ‘레이저빗(헤어맥스 레이저콤, Hairmax Lasercomb)’의 시판이 미국 FDA의 승인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FDA가 인정한 탈모 치료제품은 총 3종이 됐다. 빗의 가격이 500달러대로 만만찮고 정식으로 수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찌 됐든 탈모 환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프로페시아가 독점하고 있는 피나스테리드 계열 제제 시장의 경우, 작년 11월 말 한미약품이 시판 허가를 받으면서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탈모 전문의들은 최근 젊은 탈모 환자가 병원 치료에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가 20세기 후반 들어 본격화된 전문치료제 개발 붐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고칠 수 없는 질환이라고 여겨졌던 탈모의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초기에 치료하려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개발된 약물치료의 경우 대상 연령이 어릴수록, 초기 탈모 진행일수록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모 자체가 진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20대에 탈모가 시작되는 경우, 치료를 통해 20대의 모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상현 과장은 “탈모 치료는 되도록 일찍,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게 최상”이라며 “일반적인 남성형 탈모는 그 원인이 유전적인 데 있으므로 샴푸나 음식만으로는 제대로 치료할 수 없으며, 시중에 좋다고 알려진 요법을 사용하더라도 병원 치료를 기본으로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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