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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은 누구

  • 전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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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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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7.02.28 00:06 | 수정 : 2007.02.28 11:53

    뉴욕서 고교시절 클린턴대통령상 받은 수재
    中 1학년 마치고 유학… 대학원 다니다 軍입대
    어머니 뇌출혈 소식 듣고 삭발 기도한 효자
    작년9월 “여긴 위험한거 없어요” 마지막 편지

    “(아빠, 엄마) 여기 위험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구 6개월 동안 건강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때 봐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27일 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27) 병장이 아프가니스탄 파병 직후인 2006년 9월 29일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故) 윤장호 병장은 효심이 깊고 공부도 잘하는 청년이었다.

    아버지 윤희철(63·부동산 중개업)씨와 어머니 이창희(60)씨의 2남1녀 중 막내로 1980년 9월 21일 태어난 윤 병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넓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부모를 졸랐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유난히 자립심이 강했던 아들을 위해 부모는 유학을 허락했고, 윤 병장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94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세력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다산부대 윤장호(27 사진 가운데)병장이 부모님과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故윤장호 미니홈피
    ▲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세력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다산부대 윤장호(27 사진 가운데)병장이 부모님과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故윤장호 미니홈피
    미국으로 떠난 후 윤 병장은 1995년 딱 한 번 귀국한 이후로는 2004년까지 한국에 오지 않았다. 윤 병장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그리워 전화기에 대고 우는 사춘기 아들(윤 병장)에게 아버지는 “네가 한국에 오면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니까 오지 말라” 했고, 윤 병장은 그대로 따랐다.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 병장은 고등학교 때 클린턴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부모가 한국에서 고생하는데 보답하는 길은 공부뿐이라며, 외국에 혼자 떨어져 있어도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한 윤 병장은 집안 형편을 걱정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같은 대학에서 3년 동안 함께 공부한 박철환(28)씨는 “평소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에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윤 병장은 매주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 활동을 했으며, 교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삭발을 하고 한달 동안 새벽 기도를 다녔다.

    2003년 말 졸업을 앞두고 윤씨 부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윤 병장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었다. 직접 부모를 자동차로 모시고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해변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2003년 12월 대학 졸업식 때 윤 병장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차례로 학사모를 씌워주면서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2004년 봄, 윤 병장은 켄터키주 남(南)침례 신학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국방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그 해 12월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통역 시험에 합격한 후 2005년 6월 통역병으로 군입대를 했고, 서울 송파구 특전사 본부에 배치됐다.

    윤 병장은 제대를 9개월 앞두고 아프가니스탄행을 자원했다. 중동지역은 테러 때문에 위험하다고 가족들이 말리자 그는 “이왕 군대 생활 하는데 영어를 잘 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 싶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월급을 아껴 집에 보냈고, 부모는 그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두었다.

    윤 병장은 다음달 14일 귀국해 6월 제대할 예정이었다. “귀국하면 한국에서 취업해 부모를 평생 모시겠다”고 했었다.

    윤 병장은 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 다산 부대에 배치된 이후엔 부모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자주 했다.

    “제대하면 10년 넘게 제대로 못 본 아빠 엄마 얼굴 계속 볼 테니까 기다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으니까 한번이라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싶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이렇게 부모에게 사랑을 전한 그는 끝내 부모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윤 병장이 보낸 마지막 편지>

    엄마, 아빠에게

    안녕^^ 몸 건강히 잘 있지?

    이 편지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내일까지 내라고 하니까 2, 3주 안에는 가겠지?

    여기 생활은 괜찮아. 한국에서 군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미군들도 많아서 영어도 쓰고 한국식당에서 밥 해주는데 반찬도 많고 군대밥보다 맛있고 고기도 매 끼니마다 나와.

    당분간은 엄마랑 아빠랑 둘이 있겠네.

    형이랑 누나도 없는데 심심하겠다..ㅋㅋ

    여기 위험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구 6개월 동안 건강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때 봐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2006.9.29

    아프가니스탄에서 막내 장호가


    PS. 집 어떻게 할거야? 잘 생 각해보고 기도해 보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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