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광장] ‘요코이야기’와 ‘내가 넘은 38선’

조선일보
  •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입력 2007.02.25 23:12

    한국인을 보는 눈에 차이
    가해자면서 피해자연 하는 버릇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재미 일본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 소설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바른 아시아역사 교육을 위한 부모회’는 ‘요코 이야기’가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피해가 발생했다며 거액의 민사소송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요코 이야기’는 2차대전 말기 한국에 살던 11살 요코의 가족이 일본 패전 후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일본에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엮은 책이다. 미국 학교에서 영어교재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패퇴하는 일본인들에게 성폭행을 가한 것으로 묘사하는 등의 내용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미국의 한국인 어린이가 이 소설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는 학교에 등교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했다”며 “(그들은) 사람을 동물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썼다.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랬다는 책이 어떻게 해서 역사왜곡의 낙인이 찍히고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을까.

    ‘요코 이야기’ 논란을 지켜보면서 40여년 전 일본인의 비슷한 귀국 체험을 담아 베스트셀러가 됐던 ‘내가 넘은 38선’이 떠올랐다. 이 책은 일본 패전 당시 26살의 주부였던 저자 후지하라 데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딸과 3살, 6살 난 아들을 데리고 만주 신경(新京·장춘)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1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요코이야기’와 비슷한 ‘패전 지역 탈출기’지만 저자 일가족이 겪은 고생은 유가 아니다. 패전 후 만주에 남은 일본인들의 운명은 참극 그 자체였다. 중국인들의 학대와 강간, 소련군의 약탈 윤간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저자 일가족은 요행히 이곳을 탈출했지만 1년 내내 영양실조와 전염병의 위협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오히려 진저리를 쳤다.

    구걸하다가 안 되면 시장에 버려진 채소 찌꺼기로 연명했다. 최후의 순간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죽을 작정으로 빨간끈을 허리에 묶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 책과 ‘요코 이야기’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을 보는 시선의 차이다. 후지하라 데이는 아들들에게 말한다. “조선사람들은 궁핍한 처지에서도 우리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베풀어 주었다. 너희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후지하라 데이의 둘째 아들(후지하라 마사히코)이 성장해 일본 명문 오차노미즈대 교수가 됐는데, 그가 최근에 쓴 책 제목이 ‘국가의 품격’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책에서 한 나라의 품격을 뒷받침해 주는 보편적 가치를 열거한다. 그 첫째가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지킨다는 것, 그러나 국방력이 이웃 침략의 팽창주의로 전환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품격’은 250만부가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요코 이야기’ 저자가 자신의 모국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몰랐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요코이야기’는 ‘내가 넘은 38선’과 달리 자신이 겪은 고통을 강조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 때문에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던 한국인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명백한 역사의 가해자이면서도 짐짓 피해자인 척하며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할 줄 모르는 그의 품격 없는 모국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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