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문화가 낳은 성차별… ‘경제강국’ 디딤돌?

조선일보
  • 정희진 여성학 강사·‘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입력 2007.02.23 21:39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문승숙 지음 | 이현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320쪽 | 1만5000원

    군대가 군사 문화의 주범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반도는 학교, 회사, 교회, 가정, 관료사회 할 것 없이 일상 자체가 위계질서와 힘(폭력)의 원리가 지배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 된 지역 중 하나다. 분단은 군사적 대립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군사주의에 관한 한 남한과 북한은 오랜 세월 동안 ‘적대적 공범자’였다. 영화학자 김소영의 지적대로, 콜드 워(Cold War)가 냉전(冷戰, Ice War)으로 번역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탈냉전 이후에도, 한반도의 냉전 상태는 말 그대로 얼음처럼 동결된 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최근 4년간 무기 수입 세계 4위(북한 70위), 병력 규모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다.

    군사 문화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까. 한국 사회처럼 군사주의 연구가 없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분단 체제 말고도, 군사주의가 진보 학계나 사회운동에서조차 도전 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 문제가 ‘남성다움’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발 독재가 시작된 박정희 정권부터 김대중 정부(1963~2002)까지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를 최초로 본격 분석한 역저(力著)가 최근 나왔다. 그간 탈식민 여성주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군사주의, 시민권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전개해왔던 재미 여성학자 문승숙의 이 책은 성별(性別)을 근대성을 조직하는 핵심적인 원리로 파악한다.

    저자는 1970년대 국가안보 정책의 주된 실현 방안이 경제 개발과 남성 징집 제도의 통합이었다고 지적한다. 부국강병한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대규모 국민 동원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대중 동원은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보호자, 생계부양자=남성’과 ‘가사노동, 자녀양육 담당자=여성’이라는 개념으로 구성된 관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는, 병역을 마친 남성이 1차적 노동력으로 우선시 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남성 노동력이 집중 투입된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간주되어왔다.

    반면, 병역의 의무에서 배제된 여성은 중공업과 대비되는 의미의 ‘경공업’에 배치되어 부차적인 노동력으로 취급되었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저임금과 가정에서 여성의 무임 노동이 경제 성장의 ‘진짜’ 원인이었던 것이다. 병영국가 한국이 그토록 군사비를 많이 지출하면서도 ‘근대화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의 가정 내 노동이 사회 복지 비용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국가가 공·사 영역에 걸쳐 여성 노동을 효과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동시에, ‘자발적 참여’를 가능케 했던 ‘대중독재’의 기반을 제공했다. 반공국가는 성차별 제도 없이는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 책은, 근대와 성별에 대한 기존의 서구 남성 중심적 방법론과 시각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이 책은 시간적 질서에 따라 서구를 근대성의 기원으로 보는 ‘발전 연구’를 지양하고, 특정한 지역적 맥락에서의 근대성의 혼성적 성격을 강조한다. 또한, 성별을 근대 국가 건설의 주된 토대로 분석함으로써 이제까지 ‘사소한’ 문제로 간주되었던 성별 제도를 중요한 사회 조직 원리로 조명한다. 여성학 연구자 이현정의 정확하고 읽기 쉬운 번역도 기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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