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아버지 姓, 어머니 姓

입력 2007.02.21 22:55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임시정부가 들어선 뒤 외무장관이 각국 기자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압둘라’라고 소개했다. “압둘라가 성(姓)인가 이름인가.” “성명(full name)이 무엇인가.” 질문이 쏟아졌지만 장관은 “압둘라가 이름의 전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처럼 장관도 성이 따로 없었다. 결국 외국 기자들은 장관 이름을 ‘압둘라 압둘라’로 써 보냈다.

▶피카소의 이름은 21개 단어, 111자에 이른다. ‘Pablo, Diego, Jose, Francisco de Paula…Ruiz y Picasso.’ 부모 성에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큰아버지, 대부와 대모의 성명을 합쳐 놓았다. ‘피카소’는 어머니 성이다. 대개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스페인어권 사람 치고도 유별난 경우다. 포르투갈어권에선 부모 성을 섞어 성씨를 4개까지 쓴다. 일본 왕가(王家)는 아예 성이 없다. 신(神)으로 여겼던 전통 때문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중국에선 부모가 두 사람 성 가운데 하나를 자녀의 성으로 골라 준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도 마찬가지지만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어머니 성을 따른다. 우리는 2005년 아버지 성 따르기를 원칙으로 하되 부모가 합의하면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민법을 바꿨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사람’만 어머니 성을 따르게 했던 조항이 남녀차별이라고 국회가 인정한 것이다.

▶여성계가 어머니 성 따르기를 예외조항으로 이뤄냈을 때 유림을 중심으로 “가족 해체”라는 반발이 거셌었다. 2008년 시행되는 이 새 민법 조항을 법제처가 더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법무부에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여성개발원이 이 조항을 ‘부계 혈통주의 사고에 따른 남녀차별 법규’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부계 성씨 원칙을 없애거나 자녀가 부모 성씨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의 ‘성씨 부계주의’ 벽은 이미 ‘부모 성 함께 쓰기’ ‘성씨 버리기 운동’ 같은 다양한 도전에 의해 상당히 허물어졌다. 외국인 아내들이 늘면서 골라낙콘치타, 귈랑로즈, 남캉캉마 같은 모계 성들도 생겨나게 됐다. 그러나 우선 걱정스러운 것은 전면적 성씨 제도 변화가 몰고 올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다. 민법을 다시 손보는 것은 사회 전체가 가족의 위상을 비롯한 다양한 측면에서 차분하고 꼼꼼히 따져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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