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자기 월급 77년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거액을 주웠다면…. 그것도 러시아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팔아 날품팔이 하는 남편과 세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여성이 그랬다면….
가정(假定)의 상황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30만유로(3억6000만원)의 현금을 주운 러시아 여성은 모스크바에서 은행 매니저인 가방주인에게 연락해 돈을 돌려줬음을 물론, 가방주인이 감사하다며 제시한 사례금도 거의 받지 않았다. 30만유로는 러시아 국민들이 평균 월급 402달러를 손하나 대지 않고 77년동안 모아야 만들 수 있는 큰 돈이다.
야로슬라블의 한 현지 방송이 1일 보도한 바추리나씨의 사연은 이렇다.
바추리나씨는 모스크바 북동쪽에 위치한 관광지 야로슬라블에서 기념품 판매업에 종사한다. 그녀에겐 막노동을 하는 남편과 요리사인 큰 아들, 군인인 둘째, 초등학교 6학년생 등 세 아들이 있다. 막노동이란 게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실상 그녀가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고단한 삶을 영위하던 그녀에겐 다행이 기념품 가게나 집에서나,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애견 '드루족(친구라는 의미)'이 늘 곁을 지킨다. 그러던 1월 어느 날. 드루족은 바추리나씨와 산책을 나왔다가 큰 가방 하나를 발견하고는 바추리나씨를 향해 짖는다.
"뭘까…." 호기심에 가방 쪽으로 발길을 옮긴 바추리나씨. 약간 망설이다가 안을 들여다보니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ID카드와 명함들, 그리고 또 다른 가방 하나가 있다. 열어 보니 유로화(貨)가 한 가득이다. 갑자기 난감해진 바추리나씨. 그녀는 잠시 후 전직 경찰관인 이웃 A씨에게 조언을 구한다. "어찌 해야 할까요?" A씨로부터 "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설임없이 바추리나씨는 전화기를 들고 명함들에 적힌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한다. “혹시 돈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아닌데요” 이런 대화가 몇번이나 오갔을까. 마침내 “제가 야로슬라블에서 돈가방을 잃어버렸는데요…”라고 말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추리나씨는 ‘이젠 됐다’는 듯 “그럼 이곳(야로슬라블)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생업이 있어서 모스크바로 가긴 힘듭니다”고 말하곤 약속장소를 잡는다.
3시간 여가 지났을까. 가방 주인 대신 통화한 사람의 비서 B씨가 찾아왔다. 주저 없이 가방을 건네 준 바추리나씨. B씨는 사전에 가방 주인의 지시를 받았는지, 그녀에게 1만5000유로(1800만원)를 사례금으로 제시했다.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오히려 난감해진 B씨는 막무가내로 1만5000유로를 바추리나씨에게 맡겼다. 몇번을 거절하던 그녀가 ‘이제 그만하자’ 싶었는지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 “그럼 좋아요. 그 돈의 딱 10분의 1, 그것도 루블로 주세요!” 단돈 1500루블(5만5500원)을 요구한 것. 어쨌든 은인에게 사례금을 지불해야 할 책임이 있던 B씨는 가방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오랜통화 끝에 허락을 얻는다.
나중에 돈을 돌려준 뒤 인터뷰 과정에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녀가 1500루블만을 달라고 한데는 사정이 있었다.
“그렇게 큰 돈(30만유로)은 내게 필요없지요. 그 많은 돈은 내와 내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어요. 제가 직접 벌어야 보람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어요. 1500루블은 큰 아들과 남편의 셔츠를 하나씩 사줄려고 달라고 한 거예요. 1500루블까지 안받는다고 했으면 B씨가 가지 않을 것 같기도 했구요.”
그런데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오이 두라!(‘이런 바보같은 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그 돈이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데 왜 돌려주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녀의 행동을 칭찬했다는 것. 바로 기념품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여성 C양. C양은 “전 언니의 행동이 옳았다고 믿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바추리나씨는 남편과 큰 아들의 셔츠를 사고 남은 돈으로 개먹이를 사, 처음 돈가방을 발견한 드루족에게 줬다고 한다.
바추리나씨의 사연이 방송을 타고 모스크바로까지 보도되자, 러시아 시청자들이 감동하고 있다. 사실 빈부격차가 워낙 큰 러시아에서 30만유로의 거액을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것도 주인을 일부러 찾아 돌려주기로 마음먹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대부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전 지금도 제 행동이 썩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가방을 주웠어도 마찬가지였을 꺼예요”라며 바추리나씨는 수줍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