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추월하기 위해선 일본을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했다. 논리를 읽으면 대부분 옳은 말이다. 하지만 논리를 뒤집으면 결론도, 해법도 틀렸다.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수 있고, 추월하기 위해선 일본을 따라해야 한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부터 이상하다. 일본은 작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우린 이대로 가도 2018년까진 늘어난다. 일본은 내년부터 대학 정원이 입학 희망자를 웃돌 정도로 ‘노인대국’에다 부모들의 교육열도 신통치 않다. 하지만 우린 옛날에 소 팔던 용기로 이젠 집까지 팔아 강남에 전세 갈 정도로 교육열이 뜨겁다. 일본은 경제의 힘을 상징하는 잠재성장률이 2% 선을 오간다. 한국은 아무리 떨어졌다고 비명을 질러도 2배 수준인 4~5%다.
잠재력도, 의욕도 우리가 앞선다. 이런 한국이 “일본에겐 역시 안 돼”라고 푸념한다면 객관적으로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58개월에 걸친 일본의 경기 회복세가 우리의 침체된 현실과 한없이 대비되는 것은 현대경제연구원이 보고서에 쓴 대로다. 사실 안 좋은 결과가 몇 년간 반복되면 의욕이 충만한 사람도 움츠러드는 법이다. 그렇다면 잠재력도, 의욕도 우리보다 모자란 일본이 요즘 좋은 성적을 내는 원인은 무엇일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면, 현대경제연구원도 결론을 혹시 달리했을지 모른다.
일본이 선전하는 이유는 좋은 정부다. 경제 주체의 의욕과 성과를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정부가 잘한 것이다. 현재 일본의 성장 동력은 두말할 것 없이 기업의 국내 투자다. 없던 ‘기업가 정신’이 갑자기 살아난 것일까? 아니다. 일본 기업가들은 전에도 혼(魂)이 있었다. 다만 미국, 중국, 동남아에서 발휘했을 뿐이다. 이 혼을 국내로 끌고 들어온 것이 정부다. 구질구질하게 애국심을 호소하거나 ‘빅딜’을 운운한 적도 없다. 노동 규제, 수도권 규제처럼 정부가 풀 것을 풀었을 뿐이다.
한국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나쁜 정부 탓이다. 무조건 노무현 정부니까 나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추월하기 위해선’이란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다. 추월할 필요가 없고, 한·일 간에 해결해야 할 더 원대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좋은 정부일 수도 있다.
우리 경영자에게도 ‘기업 혼’이 없을 리 없다. 다만 과거 일본처럼 해외에서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 수도권 규제처럼 정부가 기업 활동 무대를 좁히는 규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별 수 없다. 역설적인 것은 이 규제가 하나같이 옛날 일본을 베낀 왜색(倭色) 규제들이라는 점이다. 지금 일본이 추진하는 교육 개혁도 과거에 한국이 베낀 낡은 일본식 규제들을 원산지에서 폐기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일본이 ‘나이키 운동화’로 갈아신었는데 우린 ‘게다짝’을 신고 뛰는 광경을 생각해 보자. “보기 흉해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꿈쩍 안 하는 정부, 노무현이든 누구든 일본을 추월하려면 이런 정부는 곤란하다.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 똑같은 사각링에서 싸우는데 뱃심과 의욕이 더 큰 쪽이 이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이기기 위해선 일본을 성장시킨 시스템을 따라한 뒤 이보다 훨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정부 몫이다. 정부 스스로 바뀌거나 국민이 정부를 바꾸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