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정우성을 기대하는 이유

  • 서울=뉴시스
    입력 2006.12.17 09:25

    영화배우 정우성의 감독 데뷔 선언을 놓고 말들이 많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에 표를 던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연기나 제대로 하지 무슨 감독이냐는 반응이다. 겉멋 들었다는 비난도 수두룩하다.

    사실 정우성은 현재 활동 중인 젊은 배우들 중 감독 데뷔가 가장 먼저 점쳐진 케이스였다. 오히려 본격화가 더디게 진행된 셈이다. 지난 1997년, 출세작 ‘비트’ 이후 정우성은 끊임없이 영화제작에 관심을 표해왔다.

    ‘유령’에서는 대사 일부를 자신이 직접 쓰기도 했다.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런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가 아니라, ‘이런 배경을 지닌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언급을 남겼다. 자신이 관심 있는 소재와 형식에 대해 뚜렷한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정우성의 감독 데뷔가 제대로 시동 걸린 것은 지난 2000년, 보이밴드 god의 뮤직비디오 ‘그대 날 떠난 후로’의 연출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소속사 차원의 ‘홍보용 패키지’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2002년에도 god의 ‘바보’, ‘슬픈 사랑’, ‘모르죠’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같은 해 직접 연출한 14분짜리 단편영화 ‘러브 비 플랫’을 미장센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2007년으로 잡힌 정우성의 첫 장편영화 연출은 그래서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배우의 감독 데뷔는 꽤나 흔한 일이다. 감독이라는 직책 자체가 영화 초창기에는 ‘연기 지도’에 가까웠다. 영상 연출은 촬영감독이 도맡았다. 배우 출신 연출자가 연기 지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 만큼은 배우 출신 감독에 대해 시선이 싸늘하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배우, 개그맨, 심지어 배우로서도 ‘깜짝 외도’에 속했던 가수 나훈아까지 영화 연출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절반의 성공’이라 봤자 ‘상업적 실패, 비평적 성공’의 틀에 들어간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정도다.

    한국의 ‘배우 출신 감독’ 폄하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먼저, 배우는 ‘딴따라’, 감독은 ‘전문직’이라는 이분법 잔재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영화산업은 꾸준히 감독의 직책에 더 많은 가중을 부여해왔다.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확립된 이후에는 감독에게 기술적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촬영, 편집 등의 기술적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선풍 이후에는 감독의 작가주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감독은 각본까지도 담당해야 온전한 연출자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개인예술의 차원까지 유도하려는 시도였다.

    이렇듯 다채롭고 전문적이며 창조적인 역할을 맡게 된 ‘감독’의 직책을, 일개 배우 ‘따위’가 맡을 수야 있겠느냐는 인식이 생긴 것.

    다른 하나는, 한국의 도제식 연출 시스템 영향이 있다. 한국에서 감독의 직책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만’ 노력해 온 이들의 것이었다. 서드 조감독부터 세컨드, 퍼스트로 올라가 입지를 확보한 이후에야 자신의 연출작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도제 시스템에서 빠져 나오려면 ‘해외파’로 둔갑해야 했다.

    해외에서 영화를 공부해 ‘학벌’을 따놓거나, 해외 유수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면 도제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도 데뷔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고 고달픈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연출자의 명함이, 젊은 인기 배우의 손에 턱 하고 쥐어지니 보는 눈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폄하 근거는 모두 어이없는 것이다. 감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기술적 요소에 집중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배우의 연기 통제에 주로 집중하는 감독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 김기덕조차도 영화 ‘나쁜 남자’를 연출하면서, “스토리보드는 연출팀에 맡기고 나는 배우의 연기와 감정선 조절에만 신경 쓸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결국 ‘전인 시스템’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과 유럽 작가주의 개념이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배우 출신 감독은 대개 자신의 ‘본업’을 살려 배우들의 연기 통제에 주력한다. 기술적 요소들은 신뢰할 만한 촬영감독, 편집자에게 상당부분 의존한다. 전체 분위기와 흐름 정도만 관리한다. 로버트 레드퍼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애가 등이 이 같은 타입 감독들이다.

    의외로 기술적 요소들에 더 큰 흥미를 느껴 꾸준히 테크닉을 발전시켜 나가는 이들도 있다. 멜 깁슨, 케빈 코스트너, 맥당웅 등이 이러한 케이스다.

    고정적 연출 스타일에서 벗어난 작가주의 감독들도 물론 있다. 기타노 다케시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장기’를 지닌 배우들은 그 점을 주로 부각시키는 연출을 꾀한다. 성룡은 무술연출에 주력하는 감독이다. 주성치는 개그 상황묘사에 일가견이 있다. 이렇듯, 감독은 자신의 ‘관심분야’와 ‘장기’만 뚜렷하면 되는 것이지, 여러 역할을 떠맡는 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도제 시스템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조연출서부터 올라오는 도제 시스템은 일본 영화산업이 남긴 잔재다. 구미 지역 영화산업에서, 조연출은 ‘전문직’이다. 감독이 되기 위한 발판이 아니라 연출자의 ‘비서’와 같은 역할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감독이 되나?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이들도 물론 많다. 그러나, 영화산업 내에서의 ‘전직’도 그만큼 흔하다. 각본가 출신 감독이 가장 많다. ‘크래쉬’의 폴 해기스, ‘씨비스킷’의 게리 로스 등이 각본가 출신이다. 이들은 대개 이야기의 구성과 대사에 역점을 둔다.

    촬영감독 출신도 많다. 얀 드봉(‘스피드’), 피터 맥도널드(‘람보 3’) 등 액션영화 감독들이 많다. 편집자 출신으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로버트 와이즈와 ‘겟 쇼티’의 배리 소넌펠드가 대표적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시각효과 엔지니어까지도 연출에 데뷔한다. 영화산업 내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그 분야를 중심으로 영화 한 편을 통제해낼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제한된 분야더라도 그 직책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면 자연히 영화산업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게 된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영화과를 막 졸업한 연출신동보다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분야 베테랑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정우성도 내년이면 영화계 데뷔 14년차가 된다. 그간 영화 출연작만도 14편, 몇 편의 TV 드라마와 뮤직 비디오 출연이 더 포함된다. 이제 중견급 연기자인 셈이다. 영화산업 내에서 자기 위치를 확고히 한 인물이며, 영화 한 편을 통제해낼 만한 경험과 관심이 충만하다 여겨진다.

    끝으로, ‘배우 출신 감독은 모두 연기로 획을 그은 대배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는, 반론의 사례가 너무 많다. 근래 사례로는 자신의 감독작 ‘용서받지 못한 자’ 이전까지 ‘연기 못하는 배우’의 대표주자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무도 배우 시절을 기억 못하는 청춘스타 출신 론 하워드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아카데미 연기상을 세 번 수상한 잭 니컬슨의 연출작은 아무도 기억 못한다. 배우로서의 ‘본연 역할’과 배우로서의 ‘경험을 살리는 역할’은 다르다. 정우성이 후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만큼 내공을 쌓았는지는, 그의 영화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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