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쉰을 바라보는 장년이 됐을텐데…"

입력 2006.12.09 17:00 | 수정 2006.12.09 17:03

이승복 추모행사 참여한 노병들 "우리가 증인 되겠다"

“벌써 38년이 지났네. 이제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장년이 됐을텐데…”


흰눈이 이불처럼 소복이 덮은 묘소 앞에서 70대 노인이 중얼거렸다. 9일 낮 인적이 드문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날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아홉살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이승복군의 기일(忌日).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 40여명이 방문했다. 8년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마련하고 있는 추모행사이다. 

권오강 회장이 이승복군의 묘소 앞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곳에는 이승복군 일가족 4명의 묘소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권상은기자

  


기념관 뒷쪽 산비탈에 있는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눈을 치우지 않아 미끄러웠다. 그러나 많게는 86세부터 적게는 68세까지 노병(老兵)들은 비틀거리면서 한발한발 걸음을 뗐다. 묘소 바로 아래에 있는 기념비를 읽던 노인은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12월 9일로 똑같다”며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승복 군은 함께 참변을 당한 어머니(주대하), 남동생(이승수), 여동생(이승자)과 나란히 잠들어있었다.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들은 1999년부터 매년 12월 9일에 이승복 기념관을 찾고 있다. 권오강(69) 회장은 “당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다 입이 찢겨 살해당한 이승복 사건이 거짓이라는 억지 주장이 널리 퍼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뜻을 모았다”며 “어린 학생의 죽음마저 왜곡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우리가 산 증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육·해·공군·해병대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들이 이승복군의 38주기를 맞아 묘소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권 회장은 “최근 대법원에서 이승복 사건이 진실이었음을 확정하는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추모제는 무척 뜻이 깊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이승복 사건에 대한 당시의 조선일보 보도가 ‘작문(作文)’이라고 거짓 주장해 온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따라 이승복사건은 14년에 걸친 왜곡에 시달리다 다시 진실로 결론이 났다.


회원들은 이승복군의 묘소 봉분과 상석의 눈을 치우고 추모제를 올렸다. 사과, 배, 귤 등 간단한 제수가 차려졌다. 추운 날씨에 향을 피우고 소주를 올리는 노병들의 손이 떨렸다. 권 회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우리들은 당시의 사건이 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혼돈을 야기했던 일들이 진실로 돌아온 첫번째 맞이하는 뜻깊은 오늘 이젠 모든 것을 잊으시고 안심하고 편히 잠드소서.”


이승복 사건 당시 이 지역을 맡은 동해안 방위 사령부 사령관이었던 김도명(78) 예비역 육군 대령은 “당시 공비들이 북한쪽으로 도주하는 막바지에 이승복군 일가족을 참살했고, 결국 설악산 오색약수 부근에서 섬멸됐다”고 말했다. 또 “6·25 전쟁 당시에는 이곳에서 전투를 한 인연도 있기 때문에 이승복군은 나에게 더 큰 책임으로 받아들여졌다”며 “대법원의 판결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들이 추모행사를 마치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새겨진 이승복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예비역 영관장교들의 추모 행사에는 처음으로 이승복군의 형인 이학관(51)씨 부부도 참석했다. 이씨는 그동안 회원들이 추모행사를 하는지 몰랐으나 전날 밤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이씨도 당시 온몸이 칼에 찔렸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참상을 증언했다. 회원들이 “학관씨가 그동안 마음 고생이 컸을것”이라며 위로하자 “그동안 동생의 죽음을 조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관심을 가져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답례했다.


학관씨의 부인 김인자(48)씨는 “그동안 집에서 음력으로 시어머니 제사를 올렸는데 올해는 마침 음력과 양력 모두 오늘이 기일”이라고 했다. 또 승복군을 비롯한 시동생, 시누이의 위패는 강릉의 한 사찰에 모셔두고 가끔씩 찾고 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이제 이승복 사건의 진실이 원래대로 돌아온 만큼 사라졌던 동상도 다시 세우고, 교과서에도 다시 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기일에 상석의 눈도 치우지 않고 방치하는 기념관측의 무성의를 못내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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