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힐러리 민심' 제대로 읽기

      입력 : 2006.11.10 18:39 | 수정 : 2006.11.10 18:39

      장훈 중앙대 교수


      지난 7일의 미국 중간선거는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의 패배로 끝났다. 이 같은 선거결과의 한반도 효과를 점치는, 우리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관점 역시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이라크 전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퇴진에서 적지 않은 낙관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럼즈펠드의 퇴진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맥은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의 압도적인 재선이다. 기왕의 민주당식 진보 이미지를 벗고 대테러전쟁과 국토안보를 강조하는 부시의 ‘안보화’에 상당히 동조해 온 힐러리가 진보적인 지역에서 재선된 것을 눈여겨보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희망 속에서만 미국을 이해하는 허술한 낙관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의 20세기적 진보는 럼즈펠드의 퇴진을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안보에 대한 미국민의 심판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일방주의를 접고 대화에 나설 것으로 가정한다. 기왕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약속되어 있으니, 이제 북미 간 대화는 속개되고 조만간 북핵문제가 돌파구를 찾으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낙관론은 미국외교에서 대통령과 의회가 갖는 역할 구분, 그리고 9·11 이후에 형성된 민주-공화당 사이의 ‘안보화 컨센서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시 대통령은 전쟁 중인 나라, 미국의 총사령관이다. 방대한 정보와 예산을 거느린 채 반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전시 대통령이다. 민주당 의회가 전시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리라는 것은 우리의 일방적인 기대에 불과하다. 민주당 지도자들의 화려한 약속과 달리 미국 의회는 여전히 동작이 느리고, 분권화되어 있는 ‘게으른 소방수’다. 불이 난 이후에야 달려가서 불 끄는 일을 거들 뿐이다. 게다가 지금 가장 화급한 불은 이라크와 이란에서 타오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한반도의 불은 발등의 불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 결의안을 지지했던 힐러리의 압승은 9·11 이후에 형성된 민주-공화당 사이의 ‘안보 컨센서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전쟁 자체보다는 엉망으로 진행되는 이라크 전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강조한 것은 안보화와 경제, 깨끗한 정치의 조화였다고 할 수 있다.

      관성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보수 역시 럼즈펠드의 퇴진을 좋은 기회로 본다. 미국식 국방개혁의 주인공이 물러났으므로, 한미 간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늦출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기대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방개혁의 뿌리는 럼즈펠드의 임기보다 훨씬 깊고 오랜 것이고 아울러 공화-민주당의 초당파적 지지를 받고 있는 사안이다. 이러한 틀을 외면한 채, 작통권 전환의 저지가 보수의 길이라고 믿는 한, 허탈한 실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허황된 낙관의 대안은 무기력한 체념인가? 오히려 노무현-부시 조합이 저물고 한국과 미국이 각각 새로운 국내질서를 모색하는 향후 1,2년이 중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양국의 희망과 현실 판단이 냉정하게 만나는 공동의 비전 창출을 통해서 섣부른 낙관과 체념을 넘어설 수 있다. 2009년 초에 들어설 미국의 새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움직일 것이 유력한 프린스턴 프로젝트(www.princeton.edu.ppns)는 이러한 미래비전을 구상하는 하나의 열쇠를 제공한다. 즉 공동위협에서 공동의 이익으로, 두려움으로부터 희망의 미래질서로, 군사력과 소프트파워의 결합으로 나아갈 때, 세계와 미국이 함께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지 미국의 대선주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선주자들도 귀 기울일 만한 개념들이다.


      (장훈 · 중앙대 교수 · 정치학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