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서울대 60년

조선일보
  • 김도원
    입력 2006.10.12 22:34 | 수정 2006.10.12 22:34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정희성·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 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이처럼 벅차게 표현된 작품도 드물 것이다. 서울대 국문과 출신 정희성이 이 시를 썼던 1975년은 동숭동 용두동 공릉동 등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 단과대학들이 관악산 기슭 널따란 종합캠퍼스에 모여 제2의 개교를 하던 해다.

    ▶서울대는 1946년 10월 15일 미 군정청 ‘국립서울대 설립에 관한 법령’에 따라 9개 단과대로 출범했다. 곧바로 국립대안(국대안)에 반대하는 좌익과 지지하는 우익의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초대 총장인 미군 대위 해리 앤스테드가 1년 만에 물러나면서 국대안 파동은 가라앉았지만 얼마 안 가 6·25가 터졌다. 6·25 후엔 부서진 학교를 복구하느라 다시 미국 원조를 받아야 했다. 미국이 1955년부터 6년 동안 서울대에 지원한 돈은 그 기간 한국 고등교육기관 원조 총액의 78%를 차지했다.

    ▶오는 15일로 서울대가 개교 60주년을 맞는다. 부산 피란지에 천막교실을 열어야 했던 서울대가 16개 단과대에 65개 연구소, 47개 국가지원 연구센터를 거느린 거함이 됐다. 1951년 358명이었던 교원은 4247명으로, 개교 때 수백명이었던 학생은 3만1000명으로 불었다. 1년 예산 5000억원. 몸집만은 세계 어느 대학 부럽지 않다.

    ▶서울대가 내건 60주년 슬로건은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다. 1979년 10개년 발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외친 구호도 ‘민족의 대학’ ‘세계의 대학’이었다. 3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얘기다. 엊그제 영국 ‘더 타임스’ 대학 순위에서 63위에 올랐지만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의 대표 대학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성적표다. 국제화 지표라 할 외국인 유학생도 1000명을 가까스로 넘었고 그나마 65%가 중국 출신이거나 해외동포들이다.

    ▶서울대가 정말 ‘세계의 대학’이 되는 길은 덩치를 키우고 화려한 외형을 가꾸는 데 있지 않다. 한 분야라도 세계 최고 수준을 만들어 외국의 탁월한 학자와 학생들이 오지 말라 해도 배우러 오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일류의 길이다. 흔히 듣듯 ‘공부하지 않는 서울대생’ ‘노력하지 않는 서울대 교수’들로는 결코 ‘조국의 가는 길’을 이끌어가는 대학이 될 수 없다.

    (김형기 논설위원 h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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