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나이, 몇 살이 맞나요?

조선일보
입력 2006.09.11 00:42 | 수정 2006.09.11 00:42

한남초등 ‘이상한 100주년’
동문은 “100돌” 학교는 “15년후” 校史 해석 달라
학교측, 갈등 조짐에 “비공식 전제로 행사 허용”

100주년 기념 현수막이 걸린 서울 한남초등학교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동문회에서는 학교측 입장을 생각해 정문에서 약간 비껴달았다고 한다. /정지섭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초등학교. 정문 옆에 ‘9월 23일 개교 100주년’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하지만 ‘공식 행사’는 없다. 개교 100년이면 기념비 제막 등 화려한 축제를 여는 다른 학교들과 너무 다르다.

이는 동문과 학교가 개교일을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들은 1906년(9월 23일)이라고 보는 반면, 학교측은 1921년(5월 9일)이란 입장. 그래서 이번 개교 100년 행사는 학교측의 ‘묵인’ 아래, 동문 중심의 행사로 열린다. 말하자면 ‘비공식 행사’다.

이 학교의 연표(年表) 첫 줄은 ‘1906년 9월 23일 사립 한남학교 설립-폐교’라고 돼있다. 이 사립학교는 1921년 5월 9일 문을 연 한강공립보통학교가 인수했다. 그런데 폐교 일자가 명시돼 있지 않다. ‘한강공립보통학교’가 ‘사립 한남학교’를 승계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학교로 봐야 옳은지 애매하다.

아무튼 한남초교는 한강공립보통학교를 공식 전신(前身)으로 보고 있다. 1회 졸업생도 1921년 입학생이다. 하지만 학교 이름, 사립 한남학교가 현재의 한남초교(한강공립보통학교)로부터 불과 2㎞ 떨어진 한강변에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한남학교가 실질 원조(元祖)라는 동문들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한남역 앞 동문회 사무실에서는 100주년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아들·손주가 모두 동문인 이천만(69·28회 졸업) 동문회장은 “공립학교가 문 열었을 때 나이 든 학생들도 들어왔다고 돼 있으니 분명 이전의 사립 학생들이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명확한 기록만 없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김현용 교감은 “개교 100년은 분명 2021년”이라며 “그런데 동문들이 별안간 100주년 행사를 치르자고 하시니…”라며 난감해하고 있다. 이런 학교측 반응이 동문들은 못마땅했다. “3~4년 있다가 떠날 선생님들이다 보니, 학교에 애정이 없어 큰일 치르기를 귀찮아한다”는 것.

갈등이 심해질 조짐을 보이자 신현좌 교장이 중재에 나섰다. 몇 차례 협의 끝에 최근 결론이 났다. ‘동문들이 마음껏 개교 100돌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학교가 최대한 협조하되, 모두 비공식 행사로 한다’는 것. 오는 17일 운동장에서는 동문 체육대회가 열린다. 학교는 ‘학교 사랑’을 주제로 글짓기·그림대회를 열고, 동문이 마련한 상품을 학생들에게 주기로 했다. 학교 한 편에서 100주년 기념식수(植樹)도 한다. 비용 1100만원은 동문들이 댄다. 여기까지다. 축하 현수막도 정문에서 약간 비껴 걸었다.

80년대 중반 한남초등학교는 총 65학급 5000명에 육박했다. 지금은 25학급 700명으로 아담해졌다. 2대·3대를 잇는 가족 동문이 많다. 동문회가 파악한 유명 인사로는 고(故)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 김동진 전 국방부장관, 김영일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이 있다. 동문들은 인터넷(cafe.daum.net/hannam 100)을 통해 기수별 회장단을 구성하고, 학교 관련자료도 속속 구해 올리고 있다. 동문회는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숙원사업이던 ‘총동문회’가 구성된 것은 큰 성과”라고 했다. 이 학교 졸업생이자 1학년 전혜린 어린이 학부모인 정민숙(37)씨는 “이런 복잡한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며 “행사가 잘 치러지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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