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몽골군벌이었다”

조선일보
입력 2006.09.04 23:59 | 수정 2006.09.05 00:01

“조선 창업, 한반도의 자생적 산물 아냐” 윤은숙박사 논문 논란 예상
“元서 ‘천호장’ 지위 하사, 군벌 승인받은 것
위화도 회군은 몽골 장군 출신의 배신인 셈”

윤은숙 박사는“조선왕조는 고려뿐 아니라 13~14세기 동북아시아 격변사의 총체적인 열매로 태어난 왕조”라고 말했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고려계(系) 몽골 군벌세력이었으며, 조선왕조는 북방 유목 전통을 기반으로 건국한 국가였다는 국내 학계의 새로운 해석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소장 동양사학자인 윤은숙(尹銀淑) 박사와 몽골계 중국 학자 에르데니 바타르 박사(내몽골대 전임강사)는 지난달 강원대 사학과에서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이와 같이 주장했다.

학위논문 ‘몽(蒙)·원(元) 제국기(期) 옷치긴가(家)의 동북만주 지배’를 쓴 윤 박사는 “13~14세기 동북 만주 지역을 원나라의 옷치긴(Otchigin·斡赤斤) 왕가가 지배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칭기즈칸이 1211년 자신이 정복한 영토를 여러 동생들에게 분봉했을 때 막내동생 옷치긴에게 이 지역을 다스리게 했던 것. 옷치긴가는 유목과 농경이라는 경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지배 영역 안에 이성계 가문의 본거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목조)는 전주를 떠나 두만강 유역인 오동(斡東) 지역에 자리잡은 뒤인 1255년 5000호 천호장(千戶長)과 다루가치(원나라의 지방관리)의 지위를 원 황제로부터 하사 받았다. 천호장은 몽골족이 아닌 사람이 임명되는 일이 매우 드문 고위 관리로, 사실상 옷치긴가로부터 승인 받은 군벌 세력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윤 박사는 말했다. 1290년 옷치긴가의 내분으로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익조)는 오동의 기반을 상실하고 함흥 평야로 이주했지만 천호장과 다루가치의 직위는 이행리의 증손자 이성계 때까지 5대에 걸쳐 세습됐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보물 제931호).
학위논문 ‘원·고려 지배세력 관계의 성격 연구’를 쓴 에르테니 박사는 “옷치긴가를 통해 당시 최첨단이었던 몽골제국의 군사기술을 직접 받은 이성계 가문은 옷치긴가에 직속된 오동과 쌍성총관부의 여러 조건들을 활용해 세력을 키워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계는 1362년 원나라 장수 나가추와의 전투에서 이 ‘첨단 기술’로 승리한다. 윤은숙 박사는 1388년의 위화도 회군은 몽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성계가 그 직전 원나라의 기본 무력이 무너졌음을 파악한 데서 나온 ‘몽골 장군 출신의 배신’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창업은 한반도의 ‘자생적’ 산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몽골 세계제국의 진원지인 13~14세기 동북아 격변사의 총체적 열매로 태어난 왕조가 조선왕조”이며 “친명(親明) 사대(事大)의 외형적 표방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팍스 몽골리카 체제의 중심인 북방 유목 제국적 전통을 조선왕조가 의연히 지켜낸 것”이라고 윤 박사는 말했다. 이들은 “이것은 조선왕조의 역사가 몽골사의 일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 동아시아사(史)의 큰 시각에서 고려·조선 왕조 교체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2세기 동안 만주를 지배한 선진 문명권이 조선왕조에 미친 영향을 일부 규명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원호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흥미 있는 가설이긴 하지만 좀더 치밀한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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