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다. 여느 휴일과는 다르다. 피서지나 유락 시설보다는 자녀와 함께 항일의 역사터를 찾고 싶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인 박환 교수(수원대· 사학과)와 조선일보 인턴기자 3명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했다. 두 시간 남짓. 박 교수는 "현장을 본 뒤 추모비에 묵념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옷깃이 저절로 여며질 것이다. 형무소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건물에 '추모의 장'(1층)과 '역사의 장'(2층) 전시실이 있다.
▲박 교수=선열들이 투옥생활을 했던 현장에 와있습니다.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현재까지 120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건물은 당시 가장 공포의 대상이었던 보안과 건물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이 건물에서 옷이 벗긴 채 사진을 찍히고 취조를 당했습니다.
▲임태우 인턴기자=전시물을 보니 1919년 LA타임스에 강우규 의사의 서울역 의거장면이 삽화로 보도됐는데, 당시 우리의 독립운동이 해외에도 많이 알려졌나요?
▲박 교수=주로 선교자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특히 강우규 의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통해 알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자, 임시구금실과 고문실 등을 문헌과 고증으로 재현한 '체험의 장'이 나왔다.
▲박 교수=한 여성독립운동가에게 진술한 내용을 인정하도록 억지로 인장을 찍게 하는 모습을 보세요. 그런데 내용이 일본어로 적혀 있으니, 자기 진술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인장을 찍어야 했지요.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할 때 이렇게 일본이 제멋대로 일본어로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양승희 인턴기자=이런 잔혹한 현장교육이 너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요?
▲박 교수=반일감정은 중국에서도 심합니다. 중국의 여순감옥 등 항일기념관들에 가면 '물망국치(勿忘國恥·나라의 치욕을 절대 잊지 말자)'라고 써있지요. 하지만 이곳이 단순히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교육을 통한 극일(克日)이 더 중요하니까요.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하면서도 썼던 글이 '동양평화론'입니다. 반일의 목표가 결국 평화추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반일보다는 반전(反戰), 반제국주의 의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서대문 형무소 한가운데에는 옥사 7개 동이 보존돼 있고, 그 중 한 곳을 개방해 당시 투옥의 현장을 보여준다. 현재 옥사 복도에서 '증권으로 본 일제시대'라는 특별전을 통해 일제의 조선경제수탈 현황을 알려준다. 방문단은 옥사를 나와 사형장을 본 뒤 지하감옥 앞에 섰다.
▲박 교수=지하감옥은 여성만을 투옥하기 위해 1916년에 신축한 옥사로, 사방이 1m도 채 안 되는 독감방이 4개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에 순국한 곳이라 '유관순굴'이라고도 불리지요.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에 여성들도 똑같이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당시 유관순 열사 같은 학생뿐 아니라, 기생, 평범한 주부 등 폭넓은 층의 여성들이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박송희 인턴기자=지금의 역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 교수=자국사를 잘 모르면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키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최근 들어 국사 교육은 적게 하면서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현상이 심해진 것이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