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붕괴 후 미국·일본과의 외교에 주력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현성일씨는 16일 경남대 박사학위 논문 '북한의 국가전략과 간부정책의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김 위원장은 '범의 굴에 들어가 범을 잡는다는 심정으로 미국 일본 등과의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1991년쯤 강석주 외무성 부상을 통해 "냉전이 종식되고 블록 대결도 없어졌는데 블록 불가담(비동맹) 운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이같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현씨는 또 김 위원장이 당시 외교관들에게 "우리는 이제부터 외교를 저팔계식으로 해야 한다.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외교방식"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그렇다고 적들에게 바지까지 벗어주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며 "외교관들은 당성과 계급적 원칙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겉으로 철저히 영국신사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씨는 또 "김 위원장은 1992년쯤 강석주 부상에게 핵 문제에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큼 어떻게든 핵 문제를 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으나, 제네바 합의로 핵이 대미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