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추모공원’ 문화재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06.04.28 00:44 | 수정 2006.04.28 00:46

한용운·문일평·오세창·방정환·이중섭…
근·현대 한국史 이끈 지식인들 넋 기려

만해 묘소 참배 27일 오후, 만해 한용운 선생 묘소에서 벌어진 조촐한 제사. 유홍준 문화재청장(왼쪽 무릎 꿇은 이)이 권영민 문화재위원(서울대 교수)으로부터 술잔을 받아 올렸다. /신형준기자
국내 처음으로 묘지공원이 문화재가 된다. 일제 때부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묘역인 서울 ‘망우리 추모공원’이 곧 등록문화재에 오를 예정이다. 만해 한용운, 독립운동가 오세창, 민족사학자 문일평, 아동문학가 방정환, 국민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등 근·현대 애국지사와 저명인사 17명을 품은 곳(지도 참조)이고, 휴일이면 수천 시민이 찾는 녹지공간(전체 53만평)이다. 27일 오후 2시30분. 이곳에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 이만열) 위원 7명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이 모였다. 애국지사 묘소를 ‘근대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사전 조사였다.

처음 찾은 묘소는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발기인을 지낸 장덕수(1895~1947) 선생 묘. 서경석 위원(성균관대 교수)은 “이 분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인 1937년 김활란(이화여대 총장 역임)씨에게 청혼했지만 김씨가 ‘나는 이화를 나의 남편으로 생각한다’며 거절했다”고 얘기를 꺼냈다. 다음 찾은 곳은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조봉암(1898~1959) 선생 묘. 참외·사과·배 각 3개와 북어포, 청주로 조촐한 제사를 올렸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1879~1944) 선생 묘에서도 제사를 올렸다. 서 위원과 유 청장, 그리고 권영민 위원(서울대 교수)이 절을 했다. 올해 만해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 위원은 “수상 인사 드리러 왔다”며 “조선일보에서 만해에게 물적 지원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만해는 조선일보가 1940년 강제 폐간당할 때 ‘삼국지’를 연재하고 있었다.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자리에 위아래로 마주한 문일평(1888~1939) 선생과 오세창(1864~1953) 선생의 묘도 찾았다. 문 선생은 민족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조선일보 편집고문을 지냈다. 유 청장은 “호암(湖巖·문 선생 호)이 조선일보에 차(茶)의 역사를 연재했는데, 지금 보아도 가장 정확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세창 선생 묘에서도 구수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서 위원이 “광복 뒤 3·1절 등 국가적 기념 행사 때 가장 앞에 모셨던 분”이라고 했고, 유 청장이 거들었다. “당대의 천재 최남선 선생도 위창(葦滄·오세창의 호)에게는 꼼짝 못했다잖아. 기미독립선언문을 써서 위창에게 가져갔더니 잘못된 문장을 지적하면서 그러시더래요. ‘요즘 애들, 한문 몰라서 큰일 났다’고….”(웃음)
위원들이 2시간 동안 현장을 조사하는 동안, 바람이 불면 산벚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렸다. 추모공원 내부에 마련된 4.7㎞ 순환도로에서 시민들은 산책하면서 봄을 만끽했다. 1만6800여기의 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황량한 묘지’로만 인식돼 왔던 ‘망우리’가 이제 ‘근대 역사·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직전이다.

위원들은 “유명인사 묘만 문화재로 할 경우, 다른 곳에 계신 분들과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며 “전체 묘역을 문화재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용수 위원(경북대 조경학과 교수)은 “공동묘지는 반듯하게 구획하는 게 특징인데, 이곳처럼 산의 급한 경사면을 자연스레 이용해 조경하는 등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동묘지를 만든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r>
1933년 일제가 개설했지만, 망우리 추모공원은 우리 근대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을 등록문화재로 하는 안(案)을 문화재위원회에 정식으로 올릴 것”이라고 밝힌 유 청장은 한껏 밝은 표정이었다. ‘등록문화재’란 근·현대 유산이면서 아직도 소유자가 사용권을 갖고 있는 문화재 중에 국가의 보존·관리가 필요한 문화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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