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은 남북 어린이합창단 지휘”

조선일보
입력 2006.04.13 00:02 | 수정 2006.04.13 00:06

‘우리의 소원’ 작곡한 안병원씨… 음악인생 담은 자서전 펴내
본지 학예부장 지낸 부친이 ‘우리의 소원’ 노랫말 지어

안병원 작곡가
“아버지께선 ‘허구한 날, 공부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며 빗자루를 들고 야단 쳤어요. 스무 살이 되던 해, 전 아버님이 들고 계셨던 빗자루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죠. ‘저도 다 컸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동요 ‘우리의 소원’,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로 시작하는 ‘구슬비’를 작곡한 안병원(安丙元)씨. 안씨가 올해 여든을 맞아 자신의 삶을 돌아본 자서전 ‘음악으로 겨레를 울리다’(삶과꿈)를 펴냈다.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에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동요를 가르치고, 300여 곡의 동요를 써온 작곡가다.

그는 “한평생 ‘~회장’ ‘~단장’등 ‘장(長)’으로 끝나는 감투를 많이도 달고 살았는데 알고 보면 하나 같이 어린이 단체의 장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음악을 벗 삼아 살아온 안씨는 봉선화동요회장을 비롯해 국방부 정훈어린이음악대장, 서울 YMCA 어린이합창단장, 한국어린이음악사절단장, 경복소년단 대장, 서울시연합소년단장 등 어린이 음악 관련 일은 두루 맡았다. 안씨는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 가서 부민관에서 본 ‘빈 소년 합창단’ 순회 공연 영화를 보고서 나중에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어서 세계 일주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말했다.
안씨가 젊었을 적, ‘공부도 안 하고 어린이들과 논다’고 꾸짖었던 아버지는 안석주(安碩柱·1901~50)씨. 한국 삽화의 선구자로 조선일보에 풍자적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만문만화(漫文漫畵)’를 연재했고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냈으며, 미술·음악·방송·문학·영화까지 능했던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아들 안씨는 “아버지 방에는 유화 물감이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며 흩어져있었고, 몰래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9남매의 장남이 가난한 화가가 되는 걸 반대하셨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인 1947년 안씨는 삼일절 특집 어린이 노래극을 맡게 됐고, 그때 작곡하게 된 노래가 ‘우리의 소원’이었다. 안씨는 노랫말을 써줄 작사가를 찾다가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해 삼일절 기념 방송에서 노래극이 방송됐어요. 방송을 들으시더니 평생 꾸중만 하시던 아버지께서 ‘앞으로는 잘 되겠구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안씨는 1954년에는 한국어린이음악사절단을 이끌고, 미국 48개 주에서 두 달여간 순회공연을 했고, 순회 공연 도중 미국의 레코드사에 발탁되면서 한국 최초로 어린이 노래만 담은 LP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197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간 뒤에도, 토론토 YMCA 합창단과 한국복지재단 토론토 후원회에서 일하며 어린이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제 소원은 남북이 빨리 통일을 이뤄 ‘우리의 소원’이 흘러간 추억의 노래가 됐으면 하는 겁니다. 통일이 되는 날, 남북 어린이 합창단을 판문점에서 지휘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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