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하피첩

조선일보
입력 2006.03.28 18:51 | 수정 2006.03.28 18:51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아내를 잃었다. 그것도 부음(訃音)이 바다를 건너오느라 한 달 뒤에야 소식을 들었다. 추사는 아내가 아플 때 약 한 첩 달여주지 못한 죄책에 괴로워했다. ‘월하(月下)노인 시켜 명부(冥府)에 하소연하길/ 내세(來世)엔 우리 부부 운명 맞바꿔달라 하리다/ 나는 죽고 당신은 천 리 밖에 살아남아/ 당신이 내 슬픔 맛보게 하리다.’ 추사는 차라리 자기가 죽기를 바랐다.

▶무뚝뚝한 선비들도 안으론 아내 사랑이 극진했다. 조선 초 문인 김종직의 아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증조모와 외조모 아래서 컸다. 시집와서는 7남매를 연달아 잃고 결국 아이를 낳다 얻은 병으로 떠났다. 김종직은 박복(薄福)한 아내의 영전에서 통곡하며 긴 제문(祭文)을 바쳤다. ‘당신 아버지는 정정히 계시는데 아름다운 날이면 누가 술을 마련할 것이며, 어린 두 딸 시집갈 땐 누가 짐을 꾸려주겠는가….’

▶강진에서 10년째 귀양 살던 다산 정약용에게 병석의 아내가 치마를 보내왔다. 시집올 때 입었던 헌 치마였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린 다산은 치마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첩(帖) 몇 권을 만들고 두 아들에 대한 당부를 적어 보냈다. 노을처럼 빛 바랜 붉은 치마에 썼다 해서 ‘하피첩(霞 帖)’이라고 했다. 다산은 문집에 하피첩을 만든 사연을 남겼다. ‘형제가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 것이고 두 어버이의 은혜를 뭉클하게 느낄 것이다.’

▶3년 뒤 다산은 시집간 외동딸이 눈에 밟혔던지 남은 치마폭을 꺼내 들었다. 매화에 멧새 두 마리를 그려넣고 시 한 수를 보탰다. ‘펄펄 나는 저 새/ 매화가지에 쉬는구나…거기 머물고 깃들여/ 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어라.’ 시집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치마 그림에 실어 보낸 것이다.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이 ‘매조도(梅鳥圖)’가 아름다운 것은 아버지의 애틋한 딸 사랑이 담겨 있어서다.

▶하피첩은 존재했다는 사실만 다산문집에 남긴 채 내용과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전서체(篆書體)로 된 ‘하피첩’이 TV 감정 프로그램에 등장한다. 한 수집가가 고물상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다산이 전서를 쓴 적이 없고 수집과정이 분명치 않다며 의심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 ‘하피첩’이 진짜로 밝혀져 지아비와 아버지의 뜨거운 속사랑이 지금 ‘아버지 부재(不在)시대’의 각박함을 적셔주면 좋겠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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