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구워먹으니 겨울 가고 봄이 왔다

조선일보
입력 2006.03.17 23:09 | 수정 2006.03.20 09:44


밤 미시령
고형렬 시집|창비|129쪽|6000원



‘산 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이 물음을 찾아 나는 설악의 돌을 밟고 걷는다’(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 부분)

강원도 속초 출신인 고형렬<사진> 시인은 설악산에서 화강암 지대의 돌길을 걸으며 명상에 빠진다. 돌의 침묵 속에서 아주 오래된 어떤 소리를 들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돌들은 아주 오래전 엄청난 불바다 속에서 ‘입이 불에 데어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발걸음에 닿는 돌의 존재 그 자체가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시인의 심장 속에서 뜨거운 비밀을 일깨운다. 불바다가 휩쓰고 간 뒤에 남은 돌은 비록 말을 못하지만, 세월의 풍화를 견디면서 마치 물음표와 같은 기호이거나, 말하는 혀를 연상케한다. 그 형상에서 시인은 정물이면서도 죽은 사물이 아닌 생명체로서 돌의 새 이미지를 빚어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뼈의 나뭇가지들 아래 뒹구는 불타버린 이빨, 등골 자국들// 널려있는 설악의 세계, 검은 화강암이 된/ 죽음의 길바닥을 만든, 울퉁불퉁한 혀들을 밟는다/ 나는 캄캄한 밤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 빛의 영혼들을 본다/ 머리를 들어, 아 하늘 속에 떠 있는 수많은 돌들을 쳐다본다’

예로부터 인간은 죽은 영혼이 밤하늘의 별이 될 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시인은 그 별들이 하늘에 떠있는 돌 덩어리라고 본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는 무수한 돌들이 깔려있는 산길과 같은 것이 된다. 시인은 설악산의 돌길에서 우주의 별밭을 감지한다. 그는 하나의 돌에 귀를 기울여 오랜 시간 여행 끝에 지구에 당도한 어느 별의 음악 소리를 듣는다.
고형렬 시인은 작은 생명의 숨결에서 거대한 창조의 손길을 느끼거나, 먼 별의 흔들림에서 깊은 내면의 떨림을 감지한다. 그는 여치를 들여다보면서 ‘하느님이 처음 만들 때 눈빛과/ 손길이 보인다’고 하고, ‘저녁별 보고 있으면 나뭇잎들만 눈꺼풀에서 출렁여요/ 내 가슴속에서 나뭇잎 하나 흔들려요’라고 노래한다. 실제로 고형렬 시인은 여치처럼 연약한 눈웃음을 짓고, 나뭇잎처럼 얇은 음성으로 말한다. 설악과 동해로 표상되는 고향 강원도를 떠나 오랫동안 서울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시인은 고향의 명태를 시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를테면, 속초에서 설을 쇤 뒤 미시령에서 시인은 건태를 불에 구워 아들과 나눠 먹는다. 마치 그의 아버지가 어린날의 시인과 그러했듯이.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워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2월은 그렇게 왔다 가서 이 시만 이렇게 남았다’ (시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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