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3·1절에 외치는 '대~한민국'

조선일보
입력 2006.03.01 22:42 | 수정 2006.03.01 23:24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어제는 3·1절이었다. 3·1절 경축식의 ‘대한독립 만세!’는 2006년 월드컵 D-100을 맞아 ‘대~한민국!’의 함성에 묻혔다.

1919년 3·1독립운동은 요새로 치면 근 500만명이 적극 시위에 나서 2만명이 사망, 4만명이 부상을 당하고, 11만~12만명이 검거되는 인적 피해를 냈다. 무능한 군주와 위정자들을 모시고 산 죄로 나라 잃고 이민족에 의해 짐승 취급받고 살던 백성이 스스로 나라를 되찾아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정신 하나로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우리의 민족혼을 떨친 것이 3·1운동이었다. 후손으로서 어찌 3·1절의 의미를 온고지신(溫故知新)하지 않을 수 있으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기 전에, 나라를 잃기 전 한말(韓末)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장지연은 우리가 중국에 ‘사대’(事大)하는 것은 ‘마치 오리가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당시 우리의 체질화된 사대주의를 비판하였으며, 일본 외상은 의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조선이 ‘언제든지 타국에 의지하여 지내온 버릇이 있어 국가 간의 평화를 얻는 데 있어서도 타국에만 의지하고 외교를 하는 데도 일관성이 없다’는 식으로 당시 조선왕조의 주체성 결여와 무능력을 비웃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사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벼슬하고 백성 된 이들은 눈을 뜨고도 눈먼 판수(盲人)요, 귀가 있고도 귀먹은 사람들”이라고 개탄하면서 갑오경장 이후의 우리의 모습이 ‘외면은 개화, 내면은 미몽’임을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는 어떠하였는가? 우리는 또다시 ‘밖’으로부터 오는 국제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민족과 국토가 분단되고 냉전시대의 올가미에 걸려 반세기를 넘어 60년이 지나도록 신음하고 있다. 최근 밖으로부터 오는 국제사회의 영향과 충격이 국가와 민족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사를 직접 좌우한다는 것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충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1997년 말 IMF 구제금융과 그 여파를 체험하면서였다. 자신은 국내정치고 대외정치고 정치와는 관계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가정이 깨어졌으니,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조차도 ‘IMF’를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비로소 ‘안’의 정치를 추슬러 IMF를 극복하기 시작하고 밖의 정치에서 분단의 종식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주체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성명이었다. 그런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열린 민족적 희망, 더구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로 그동안 천형(天刑)처럼 타고난 신체적 열등감을 벗어버리고 모두들 ‘하나’ 되어 우리들과 후손에 대해 갖게 되었던 그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민족적 희망은 지금 어디로 갔나?

우리는 100년 전 나라의 멸망,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3·1독립운동, 해방 후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 6·15남북공동선언과 같은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아이디어의 경쟁과 소통이 없는 사회,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하는 분열된 사회, 개인과 당파의 과도한 이익 때문에 공익을 거부하는 사회, 집안 족보에 이름 석 자 올리는 것을 여타 사회적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의식세계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3·1절에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우리가 2006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담아 외치는 “대~한민국!” 속에 깨어 있는 민족정신, 열린 민족정신으로 가득 찬 “대한독립 만세!”가 함께 들어 있기를 희망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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