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따내려 국회 화장실까지 따라가 설명"

    입력 : 2006.02.24 19:08 | 수정 : 2006.02.25 08:47

    [조선인터뷰] 내달 임기마치는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
    대장암 수술만 6000건 직원 야식비까지 챙기는 꼼꼼함 덕에 ‘잡음’ 없어
    장비·인력, 세계최고 수준 日 암센터 원장 와보고 “자기꿈을 이뤄놨다”고 해

    그는 매 주말이면 서울 서초구 우면산을 2시간 가량 등산하며 건강을 다진다. 각각 다른 코스로 산을 두 번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으면서 기분도 두 번 좋아진다고 한다./채승우기자rainman@chosun.com
    국립암센터는 2000년 출범 당시 ‘국가 암적 존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300억, 400억, 500억원…. 너무 많은 돈이 들어 국가 예산 낭비 사례 1호라는 악명도 얻었다.

    그런 국립암센터가 6년 만에 세계 굴지의 암센터로 발전했다. 총 3251억원이 투입돼 병원·연구소·암검진지원센터 등이 세워지고, 암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에 9개 지역 암센터도 속속 설립되고 있다. 암센터 전국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사이 국내 암환자의 생존율도 40%대에서 50%대로 올라섰다.

    국립암센터가 이렇게 급성장한 데는 초대 원장을 맡아 6년간 암센터를 이끌어 온 박재갑(朴在甲·58) 원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암 정복에 미친 사람’ ‘세계적 암센터 만들기에 승부를 건 사람’ ‘금연운동에 몸을 던진 사람’…. 목표를 향한 강한 카리스마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로 국내 암정책을 리드해왔던 그가 3월 12일 임기를 마치고 원장직에서 물러난다.

    ―평소에 암을 십중팔구 낫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인가?

    “흡연이 암 발생 원인의 30%를 차지하니까 금연하면 전체 암의 30%가 예방된다. 간염 백신을 맞으면 간암 예방 효과로 간암이 차지하는 비율12%가 줄어든다. 이 두 개만 합쳐도 벌써 암의 42%는 걸리지 않는다. 여기에 위암·대장암·유방암은 조기발견하면 90% 이상 완치되는데 이 부분이 전체의 28%를 차지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70%가 된다. 나머지 30%의 경우 현재 암 생존율이 50%이니까 그중 절반은 암에 걸려도 치료된다. 따라서 85%가 암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십중팔구 낫는 것 아니냐.”

    ―암센터 구축 예산 3000여억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인천 월드컵 문학경기장을 짓는데 3305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 그 정도 쓰는데 국민 건강을 위해 이 정도 비용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예산 확보에는 뾰족한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획예산처 담당자에게 스무 번 넘게 질리도록 찾아가 필요성을 설명했다. 암검진지원센터 설립에 필요한 495억원은 당시 국회예산결산위원장을 국회 화장실에까지 따라가서 설명했고, 연구동 건립비 307억원은 기획예산처 장관을 등산가서 우연히 만난 것을 계기로 따라붙었다. 408억원이 소요된 양성자치료센터 예산 확보에는 당시 폐암에 걸려 암센터에서 치료받던 박정구 고(故) 금호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줬다.”

    ―기계값만 360억원으로 국내 최고가 의료기기를 갖춘 양성자치료센터는 암 극복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내년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이 기기는 일본에도 2대밖에 없다. 안구(眼球)암이나 전립선암 등 작고 정교한 기관에 생긴 암을 주변 조직은 다치지 않게 하면서 양성자를 쪼여 암을 죽이는 장비다. 이를 이용하면 치료를 위해 안구나 전립선을 적출하지 않아도 된다. 민간병원 암환자에게도 개방된다. 우리는 장비와 인력 면에서 세계 최고의 암센터를 지향했다. 폐암에 걸린 우리나라 최고 부자(삼성 이건희 회장을 말함)를 완치시킨 세계적인 폐암 전문의(이진수 박사 지칭)도 우리 암센터에 있지 않은가.”

    ―국립암센터만의 특별한 치료 시스템이 있는가.

    “진료과를 없애고 위암·간암 등 암 종류별로 센터화했다. 암에 ‘내과 위암’이 어디 있고 ‘외과 위암’이 어디 있나. 암 환자들이 그걸 어떻게 알고 진료과를 찾아 가겠는가. 그래서 암 환자를 놓고 여러 과 의사들이 모여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세계최고의 암센터라는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병원도 그렇게 못했다. 일본 암센터 원장이 와서 보더니 “자기의 꿈을 이뤄놨다”고 하더라.”

    ―박 원장은 청와대나 공공건물에서 금연이 시행되도록 법제화하는 데 가장 앞장 섰다. 최근엔 국회에 ‘담배 제조와 매매를 금지하는 입법’ 청원까지 했는데, ‘금연 전도사’를 자임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담배에는 69종의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있다. 청산가스다. 최근 이슈가 된 ‘말라카이트 그린’은 쥐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개연성만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목소리 커지며) 왜 한 해 수만명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담배는 판매 규제를 하지 않는가? (목소리 더 커지며) 그렇다면 마약도 선택의 문제로 놔둬야 하나. 누가 뭐라 해도 국립암센터 원장은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본다. 판매 금지도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고 10년 후에 성인 흡연율이 5% 이하로 떨어지면 하자는 것이다. 선언적 의미로 담배를 규제할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갖자는 것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호기심으로 담배를 딱 한 번 피워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입에 댄 적이 없단다. 서울대 의대 후배인 3명의 사위가 모두 흡연자였는데 결국 그의 권유로 담배를 끊었다.

    ―최근 남성 흡연은 줄고 되레 젊은 여성 흡연은 늘고 있다.

    “여성은 태어날 때 난자를 200만개 갖고 태어난다. 사춘기가 되면 30만개가 남고 이것에서 평생 생리주기 동안 약 500개가 배출된다. 난자는 새로이 생성되는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담배를 피워봐라,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듯 독극물에 난자를 절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젊은 여성은 미래의 아기를 생각했으면 한다.”

    ―암 환자들은 경제적인 부담을 가장 걱정하는데….

    “솔직히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현 재정 수준으로는 암 진료비 절감이 더 이상 어렵다. 그런데 정부는 ‘표 떨어질까봐’ 제대로 말을 못하고, 시민단체는 의료소비자 눈치보고, 의사는 ‘너희들 돈 더 벌려고 그러냐’란 말 들을까봐 목소리를 못 낸다. 하지만 재정이 있어야 혜택을 늘릴 수 있지 않은가.”

    대장암 전문의인 그는 4년 전과 2년 전에 대장암 전 단계인 대장 폴립(용종)이 생겨 내시경으로 제거했다. 이 때문에 그는 대장내시경을 매년 받고 있다.

    ―암과 싸우는 환자들이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항상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설사 생존율이 1%라도 내가 살면 100%이고 죽으면 0%인 것이다. 확률이 반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까지 의사와 상의하여 고통 없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암은 그렇게 관리하는 질병이다.”


    박재갑 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 1981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가 됐다.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대장암을 전공으로 삼았다. 그때만 해도 외과 의사의 주 업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위암수술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대장암이 급증하면서 그는 이 분야 ‘스타 의사’로 떠올랐다. 이제까지 그가 집도한 대장암 수술만도 6000여건이다.

    타고난 건강 체질로 그는 아침 7시부터 암센터 회의를 주재하고 밤늦게까지 직접 세미나에 참석하여 연구를 독려한다. “박 원장 무서워서 논문을 안 쓸 수 없다”라는 것이 암센터 의사들의 푸념이다. 맘에 드는 연구원이 없으면 그 자리를 아예 비워 놓을 정도로 인력 관리도 철저했다. 직원들 야식비도 챙기는 꼼꼼함이 1000여억원의 고가(高價) 의료장비가 들어간 암센터에서 ‘잡음’ 하나 나오지 않게 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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