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두 카우보이의 사랑

조선일보
입력 2006.02.23 18:09 | 수정 2006.02.26 14:33

카우보이 남성성도 본능 앞에선…
결혼으로 동성애 탈출 시도하지만
평생'그들만의 에덴동산'그리워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을 보고 나서 일종의 ‘탈진 상태’에 빠졌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남자였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상업화된 게이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속도시 서울에서, 가난한 카우보이의 사실적인 로맨스를 지켜보는 일은 분명 버겁고 낯선 경험. 하지만 그보다는 이들의 20년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운명의 비극성이 ‘게이’라는 성적 소수자의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울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안 감독의 시선은 얼음처럼 냉정하지만, 2시간 뒤 “I swear(맹세할게)…”라고 더듬거리는 주인공의 마지막 고백을 지켜보는 관객은 충혈된 자신의 심장에 기진(氣盡)하기 마련이다.

양떼 방목장 일자리를 찾아 트럭을 몰고 온 카우보이 잭(제이크 질렌할)은 사이드 미러에 비친 제 또래 청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온 스무 살 에니스(히스 레저)다. 시공(時空)은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성 관념을 지닌 1964년의 남부 와이오밍. 그들은 로키산맥의 한 자락인 브로크백 마운틴(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에서 24시간을 붙어 지내며 여름 한철 양떼를 돌본다.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텐트 속에서 몸을 섞은 두 카우보이. 하지만 통정(通情) 이후 그들의 첫마디는 미국 남부의 고정관념이 소심한 두 청년의 의식을 어느 정도 지배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난 게이가 아냐!” “나도 아냐. 없었던 일로 하자”.

성기가 뽑혀나간 채 마을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호모 변태’를 아홉 살 때 목격한 에니스에게 ‘동성애자’라는 낙인은 최악의 공포였고, 최고의 로데오 선수가 꿈인 잭 역시 허겁지겁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한다.

신체보다는 감정의 노출에 무게중심을 두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카메라는 에니스와 잭 주변 인물의 상처도 놓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온 뒤 본능을 괄호 속에 숨긴 채 이성(異性)과 가정을 꾸린 두 사내. 금기(禁忌)에 몸을 떠는 카우보이들의 속은 갈수록 황폐해지지만, 뒤늦게 남편의 정체성을 알게 된 아내의 내면 역시 조각나기는 마찬가지다. 결혼’을 통해 탈출을 시도해 본 이들의 노력은 바닥부터 허물어지고, ‘양육’과 ‘생활’이라는 현실적 조건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까지도 갉아먹는다.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남성성과 ‘동성애자’라는 본능의 충돌 사이에서, 그들의 삶과 인연은 닳아 스러져 갔다.
‘브로크백’의 사전적 의미는 회귀(回歸)라고 한다. 영화 속의 가상 공간 ‘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니스와 잭이 처음 만난, 그리고 일생 동안 그리워한 그들만의 ‘에덴 동산’이었다.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필두로 이 영화가 성취해 온 수십 개 트로피보다 소중한 것은, 정서적으로 퇴락한 현대인의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자기 만의 ‘에덴 동산’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건조하게 요약하면 ‘게이 로맨스를 소재로 한 대하드라마’지만, 이안이 그려내고 있는 이 유장한 풍경화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내달 5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이 작품이 몇 개의 오스카를 거머쥘지는 큰 관심 없다. 조용히 ‘브로크백 마운틴’을 한 번 더 오르고 싶을 뿐이다. 3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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