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 인터뷰] (21) 현대 홍원기

입력 2006.01.20 13:17 | 수정 2006.01.20 13:17

"내 덕에 찬호 ML 갔죠"

두산에서 현대로 이적한 홍원기가 새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올해의 첫 손님은 조금 특별한 선수입니다. 지난해 FA(자유계약)를 선언하고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 올초 두산과 계약하자마자 현대로 트레이드 된 홍원기(33)입니다. 극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인생의 고비때마다 극적으로 바뀐 운명과 이를 극복하는 자신의 노력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코리안특급' 박찬호(33ㆍ샌디에이고)가 가장 믿고 따르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박찬호의 결혼 소식을 알고도 약속을 지키기위해 1년간 침묵을 지킨 든든하고 믿음직한 친구입니다. 어느 겨울 뜻밖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서 '인간 홍원기'와 '박찬호의 친구 홍원기'를 동시에 만나봤습니다.
홍원기가 아내 이혜숙씨(오른쪽)와 딸 채연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지도자요? 아직 그라운드를 떠날 때가 아닙니다.>

-FA를 선언하고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상관없어요. 시장에서 내 가치를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막상 시장에 나오니까 평가가 냉정하더라고요.(웃으며)지난해까지는 버틸만 했는데 1월이 되고나니까 불안했죠.

-FA를 선언했는데 코치제의를 받는 기분은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당황했죠. 감독님으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지 몰랐다니까요. 6년간 몸담았던 두산에서 지도자를 하는 것이 꿈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정리했죠. 김경문 감독님도 선수로 뛸 수 있는 곳을 알아보라고 허락을 하셨죠.

-계약하자마자 현대로 트레이드 됐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계약하는 날 두산에서 얘기를 해 줬죠. 현대에서 필요한 선수로 불러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요. 사실 한화에 있을 때 현대와 트레이드될 뻔하다 카드가 맞지않아 두산으로 급선회했는데…. (웃으며) 원래 가야할 팀으로 간 셈이죠.

< 따뜻한 봄날의 덕아웃은 추웠다>

-한화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 될 때도 지금처럼 무덤덤했나.
▶많이 놀랐죠. 어릴 때였으니까….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장모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우연히 뉴스를 봤는데 트레이드됐다고 하대요. 통보를 받은 것은 다음 날로 기억해요. 신혼이던 그 때 아내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흘린 눈물 때문에 더 힘들었죠.

-트레이드는 선수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두산에 와서 생전 처음 백업이라는 자리에 섰어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어색했죠. 주전이면 땀이 날 4월에 덕아웃에서 파커를 입고 앉아 있어야 했어요. 어느날 아내에게 "봄날의 덕아웃은 춥더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2년 후 우승을 하자 그 때 그 말에 자기도 놀랐다고 고백할 정도였다죠. 걱정을 많이 했다는 말을 2년간 못한 셈이죠.

-주전에서 갑자기 백업을 맡게 되면 스스로 포기하곤 하는데.
▶빨리 인정하려고 했죠. 중고교를 거쳐 대학, 그리고 프로 초년병 때의 주전은 잊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즐기면서 조그마한 것에 성취감을 느끼려고 했죠. (웃으며) 짧고 굵은 것 보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전천후 내야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에서 살아 남기위해 4개의 글러브를 샀어요. 원래 포지션인 3루는 김동주가 버티고 있었고, 다른 포지션도 만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멀티포지션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프로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기억한다면.
▶한화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되던 해였죠. 그해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던 날은 잊을 수가 없어요. 집에서 아내와 선배와 술을 마시며 애써 외면하던 TV를 봤는데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대요. 왠지 모를 눈물이 북받쳐 올랐죠. 내 생애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을거에요.

-성공이란 단어를 떠올린 때가 언제였나.
▶당시 김인식 감독님이 어느날 갑자기 부르더니 "원기야, 너보니 든든한 보험 하나 들어놓은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데요. 그 때 그 말은 내 인생의 보험이기도 했죠. 성공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 박찬호와 뒤바뀐 운명>

-홍원기 하면 박찬호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알려져 있는데.
▶(웃으며) 그 놈 때문에 고생많이 했어요. 결혼설 터졌을 때도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았는지…. 그래도 그 자식이 세상에 가장 믿는 친구인데 입을 열 수 없었죠. 결혼식을 하는 날 내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같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학창시절은 박찬호와 같이 살았죠. 죽마고우라는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운명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운명적인 인연?
▶(웃으며)내가 어깨만 안 아팠더라도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지 못했을 걸요? 공주 중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제가 에이스였고, 찬호가 3루수였어요. 그런데 그해 갑자기 어깨 부상을 당해 공을 던지지 못하자 감독님이 어깨가 좋고 손이 큰 찬호를 투수감으로 점찍은 거죠. 그리고 제가 찬호 대신 3루로 가고…. 완전히 운명이 뒤바뀐 거죠.

-찬호에게 그런 말을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그럼요. 가끔 찬호에게 농담삼아 나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 가지 못 했을 것이라는 말을 해요. 찬호도 그 말에 꼼짝 못하죠.

< 어린 찬호는 독했다>

-어린 시절 친구 박찬호가 아닌 야구 선수 박찬호에 대한 인상을 말한다면.
▶정말 독했어요. 단체훈련 때는 평범한 선수였지만 혼자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친구였죠.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시간에도 철저했던 친구였어요.

-자기만의 시간이라면.
▶어릴 적 찬호에게 개인적인 시간은 혹독한 개인 훈련 시간이었을 뿐이었죠. 찬호는 정말 욕심이 많은 친구였거든요. 지기도 싫어하고…. 어렸을 때 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배워 온 셈이죠. 누가 뭐래도 찬호가 메이저리거가 되고 성공한 이유는 바로 그런 자기와의 싸움을 어릴 적부터 해왔기 때문이에요. 개인훈련하다가 '실종 사건'까지 났을 정도니….

-실종사건?
▶하루는 학교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밤 늦게 찬호 어머님이 저희집에 전화를 한 거에요. 찬호가 없어졌다고…. 화들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수소문해도 깜깜 무소식이었죠. 알고보니 찬호, 그 자식 집 옥상에서 혼자 연습하다가 공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어버린 거에요. 정말 혀를 내둘렀죠.
홍원기 가족들이 박찬호-박리혜 부부가 출국하기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폭탄주 한잔에 15년간 잃었던 우정을 찾다>

-얼마전 박찬호 100승 기념식 전날 공주고 시절 친구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제가 마련한 자리였어요. 물론 100승 기념일에 옛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자리였지만 그보다 더 뜻 깊은 자리였죠.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15년 전 사건으로 서먹서먹 했졌던 친구들이 회포를 푸는 날이었죠. 오래된 얘기였지만 그 일 때문에 찬호와 친구들이 멀어진 것 같아 제가 자리를 마련했어요.

-15년전 사건?
▶공주고 2학년때 였어요. 그 때 전국체전을 10일 정도 앞두고 너무 힘들어 도망을 가기로 하고 팀을 이탈한 거에요. 근데 그 때 찬호는 집안사정 때문에 혼자 팀에 남았거든요.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그 때 일로 본의 아니게 친구들과 멀어진 것 같더라고요.

-15년만에 우정을 찾은 셈이네
▶다행히 그 때 선수들이 돌아와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한데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져 갔죠. 그래도 어린 시절 그 사건의 여운은 계속 남더라고요.

-피로연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었을텐데.
▶자리를 마련하고 밤 11시쯤 전화를 했더니 찬호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오더라고요. 그날 찬호와 버터발음 대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만 옛날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죠. 찬호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생전에 마시지 않던 폭탄주까지 마시더라고요.

< 원기야, 지금 내 기분 말해줄까?>

-찬호가 출국하면서 임신 사실을 밝혔다.
▶솔직히 찬호가 그렇게 일찍 발표해 놀랐어요.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리혜씨와 제 아내가 발표 이틀전에 병원에 함께 갔었거든요.

-임신 사실을 찬호보다 빨리 안 셈인데.
▶그때 제가 찬호와 피트니스 센터에서 웨이트를 하고 있는데 경호원이 다가오더니 찬호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얘기하며 악수를 하는 거에요. 저도 그 때 직감하고 악수를 건넸죠.

-굉장히 기뻐했을텐데.
▶갑자기 하던 운동을 멈추고 나보고 빨리 리혜씨가 있는 자기 방으로 같이 가자고 얘기하더라고요. 가면서 찬호가 내게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어떤 말을 했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원기야, 내 지금 기분 아냐?"고 하더니 "지금 나 텍사스로 이적할 때처럼 흥분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갑자기 아이를 가지게 돼 걱정이라고 얘기했죠. 계획을 하고 몸조심도 하면서 애를 가져야 하는데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영락없는 초보 아빠네.
▶그래서 제가 얘기했죠. 야 임마 니 같은 몸이라면 보통사람이 정성들인 몸보다 100배는 낫다고. 그래도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웃으며) 내 딸아이가 벌써 10살인데 찬호가 아빠되면 가르칠게 한 두가지가 아닐 것 같아요.

(스포츠조선 손재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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