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때문에 인생 망친 4명, 그 후…

입력 2006.01.19 11:04 | 수정 2006.01.19 11:27

"이놈이 들어와 한시간 패고, 저놈이 또 한시간을…"

지난 1984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가 연루된 ‘서울대 민간인 감금·폭행 사건’(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 당시, 폭행을 당했던 청년 4명의 인생(人生)이 그 사건 이후 뒤죽박죽이 됐다고 18일 발매된 월간조선 2월호가 보도했다. 유 내정자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신분으로 시민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했지만, 피해자는 프락치가 아닌 것으로 법정에서 밝혀졌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폭행 피해자는 정용범(47), 전기동(51), 임신현(48), 손형구(41)씨다.
이 중 정용범 씨는 폭행 피해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의 어머니 전영재(79)씨는 “맞고 집에 왔을 때 온몸이 시퍼렇게 돼 있었다. 그 전에는 공무원 시험 공부도 하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했다. 얻어맞은 후부터 헛소리를 하고 완전히 병신이 됐다. 후유증으로 몇 년 동안 밤에 제대로 못 자고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장가도 못 갔다”고 했다. 정씨는 현재 음악 CD를 카페에 돌아다니며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린다고 한다.

전기동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고시 공부를 접었다고 한다. 몸이 아파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자주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전씨는 뒤늦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 현재 관악구청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폭행을 당하던 중 병원에 실려갔던 그는 “유시민은 지금까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변명하고, 거짓말을 하다가 기회만 되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피해자들의 가슴에 끊임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유시민은 사건 당시 나이가 제일 많은 자로, 현장을 오가며 교묘하게 치고 빠지고 하면서 폭행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라고 했다.

임신현씨는 폭행 이후 대인기피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대학 진학을 접었다고 한다. 임씨는 “당시 이놈이 들어와서 한시간 패고, 저놈이 들어와서 한시간 패고…. 민간인을 패 놓았으니까 문제가 될까봐 어떻게든 프락치라는 기록을 남겨 놓으려고 자백을 강요한 것 같다”고 했다. 임씨는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절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단청(丹靑) 기술을 배워 생활한다. 그는 “그 사람(유시민) 보기 싫어 TV를 안본지 오래됐다. 거짓말을 좀 했다고 가둬놓고 폭행하는 것들이 인간이냐. 그런 사람을 공직에 임용하는 나라가 한심스럽다. 내가 사는 곳이 하필이면 유시민의 지역구(경기 고양 덕양갑)인데 여유만 좀 있다면 이사가고 싶다”고 했다.

손형구씨는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이후 외국에 나가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손씨 어머니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골치가 아프다”라고 했다. 그는 “나는 그 사람(유시민) 인상만 봐도 싫어요. 아무리 나라에 인재가 없어도 그렇지 그런 자를…”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지난 2004년 4월 17대 총선 때 유 내정자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었다. 유 내정자가 선거 홍보물에서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이미 명예회복을 하였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저를 조작으로 엮어 넣은 사건’이라고 기재한 것이 허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1심에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민주화 유공자로 명예회복을 했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지만, 기재 당시 유시민이 허위일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전두환 정권이 엮어 넣은 사건이라는 표현도 다소 과장됐지만, 단순한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 이 기사 전문은 현재 판매중인 월간조선 2월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