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아픈 기억 지운다고 사랑이 잊혀질까

  • 이동진기자

    입력 : 2005.11.08 19:12 | 수정 : 2005.11.09 11:36

    지워질수록 더 붙잡고 싶은 사랑의 추억…
    짐 캐리, 우울하고 과묵한 내면연기 돋보여

    이터널 션샤인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삶에는 두 종류의 비극이 있다. 사랑을 잃는 비극이 그 하나. 나머지 한 가지는 사랑을 얻는 비극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랑이 무료함 때문에 시작되어 싫증 때문에 끝나버리는 것일까. 마침내 목적을 이룬 간절함은 짧은 시간 환희로 꿈틀대다 독하고 질긴 권태에 뼈째 잡아 먹힌다. 수명이 다해 길게 누워버린 사랑의 시체를 허다하게 목격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설까. 또는, 왜 형해만 남은 옛 사랑을 못내 그리워하는 걸까.
    상대방에 싫증난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첨단 서비스를 이용해 서로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함께 한 그 많은 시간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조엘(짐 캐리)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심하게 다툰 후 뒤늦게 찾아가 사과하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거듭된 갈등에 지친 클레멘타인이 잊고 싶은 기억만 지워준다는 라쿠나사(社)의 첨단 서비스를 받은 것. 그녀가 자신에 관한 추억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화가 치밀어 자청해 자신도 그 회사로 간다.

    ‘이터널 선샤인’(10일 개봉)은 황홀할 만큼 감성적이면서 혀를 내두를 만큼 이성적이다. 모처럼 볼만한 영화들이 잔뜩 깔린 올 11월 극장가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만큼 매력적이다.

    조엘의 기억 속을 누비는 복잡한 구조와 편집 때문에 이 영화는 중반까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삭제당하지 않으려고 기억 속 연인들이 도망치고 숨는 그 모든 과정의 메커니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영화는 기기묘묘한 설정으로 관객에게 복잡한 퍼즐 숙제를 던져주는 SF가 아니라,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100% 사랑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뛰어났지만 절제와 통제를 잃었던 ‘휴먼 네이처’의 실패를 딛고 다시 만난 미셸 공드리의 연출과 찰리 카우프먼의 각본은 최상의 조합으로 재치의 너비와 사색의 깊이를 모두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터널 선샤인’은 더없이 낭만적이며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두 사람이 두 차례에 걸쳐 만나는 뉴욕 인근 몬타크의 겨울 바닷가 풍경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고, “그럼 어때?”라고 조엘이 나직히 내뱉는 이 영화의 마지막 짧은 대사는 그 모든 사랑의 상처를 다 아물게 할 것만 같은 치유력을 지녔다.

    의상보다 머리 색깔을 더 자주 바꾸며 등장하는 케이트 윈슬렛은 톡톡 튀는 생명력 그 자체인 여성 캐릭터를 멋지게 살려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편견을 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에게 짐 캐리는 오래도록 숨겨온 우울하고 과묵한 한 사내의 내면을 진지하게 열어 보인다. ‘짐 캐리스러운’ 그 모든 동작과 표정의 형용사를 버리고, 이 영화에서 그는 온전히 고유명사가 되었다.

    무차별적인 권태의 폭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랑했던 이유가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들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그 모든 기억마저 사라진 뒤에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은 남아 우리의 등을 다시금 떠민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곳이 진창이든 꽃밭이든, 그래, 좋다. 다시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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