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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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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4.18 18:44 / 수정 : 2005.04.18 18:44

강정인 서강대학교 정외과 교수



오는 25일은 ‘법의 날’이다. 법치주의(法治主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은 흔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한다. 1993년에 권창은 교수(고려대 철학과)와 나는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거나 주장한 적이 없다”는 논문을 거의 동시에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학계의 설득력 있는 반론이 이제껏 제기된 바도 없다. 그런데도 국가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법조계에서 잘못된 해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교과서 내용 중에서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는 구절에 대한 보완을 권고했다. 그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의 ‘준법정신’과 관련된 단원에서, 소크라테스가 탈출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법은 국가와의 약속이라는 점과 “나는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고 그것이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일지라도 지켜야 한다”고 서술한 구절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 역시 중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일화’에 대해 수정을 권고했다. 헌재는 그 일화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준법 교육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적용된 결과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와 헌재가 국민의 인권 침해와 무리한 준법 정신의 강조를 방지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교과서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사실은 일견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인권위와 헌재의 입장은 여전히 소크라테스의 법 사상을 곡해하고 있다.

두 기관의 논리를 살펴보자. 먼저 국가인권위는 “소크라테스의 법철학은 지금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표방한 법철학과 맞지 않으며” “근대법의 역사는…오히려 악법에 대해서 저항한 역사”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법의 형식만을 중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법률의 목적과 내용도 정의에 합치할 것을 요구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비교 토론을 위한 자료로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법사상을 정면으로 왜곡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자신이 과거에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천명했다. 그리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법언(法諺)에 내포된 “모든 국법을 지켜야 한다”는 준법 의무보다는 신의 명령인 철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 이른바 법원의 ‘철학 포기 조건부 석방’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또 ‘크리톤’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코 고의로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정의의 원칙을 ‘준법 의무’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전체적인 법사상은 오히려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에 부합한다. 따라서 시민불복종 이론을 논의할 때, 소크라테스의 사례는 미국 소로(Thoreau)의 일화와 함께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으며,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을 주도한 킹 목사 역시 자신의 시민불복종 운동을 정당화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인용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인권과 헌법 수호의 최고·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두 국가기관이 잘못된 교과서의 법철학적 근거가 되어온, 그리고 과거 법조인들이 유지하고 보급해온 소크라테스의 법사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구태의연하게 고수하는 태도는 안타까운 일이다.

(강정인·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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