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레터/ '도그빌'의 집단

  • 이동진기자

    입력 : 2003.08.03 17:17 | 수정 : 2003.08.03 17:17

    '악'은 무리 속에서 자란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우화‘도그빌’.
    뉴욕 사람들이 오래도록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64년 키티 제노비즈라는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지요. 그는 대낮에 범인에게 30분 동안 쫓기며 세 차례나 공격당했습니다. 38명이나 되는 이웃들이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돕기는커녕 누구도 경찰에 신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뉴욕대 학자 존 달리는 어느 심리 실험에서 방에 있는 한 학생에게 간질 발작 연기를 시켰습니다. 이 경우 옆방에 단 한 명이 있을 때는 달려와 도와줄 확률이 85%였지만, 자신 외에 다른 사람 4명이 더 발작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도와줄 확률이 38%로 떨어졌습니다. 즉,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있으면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희석된다는 결론이었지요.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도그빌’은 도그빌이란 작은 마을에 연약한 여성 그레이스가 숨어들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호의적이던 사람들이 그에게 현상금이 나붙은 것을 알게 되면서 숨겨주는 대가로 가혹한 노동을 요구합니다. 그레이스를 성적으로까지 학대하던 사람들은 결국 목에 개목걸이까지 채워 감금합니다.

    ‘도그빌’은 결국 집단은 악(惡)이라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마성의 핵심에는 집단성이 있다는 것,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름대로 선량하지만 집단을 이루면 가혹한 행동도 망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혼자서 악마가 되려면 대단한 ‘자질’을 타고나야 하지만,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 한구석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문화혁명기를 다룬 영화 ‘패왕별희’의 눈먼 대중들로부터 대공황기 ‘도그빌’의 살벌한 마을 사람들까지, 그들이 행한 도를 넘는 악행은 결국 군중심리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열린 나치 전범 재판을 보면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악의 얼굴이 이토록 평범하다니”라고 즉각적으로 탄식했던 것은 악의 집단적 속성을 잠시 잊은 채, 그 악행에 동참한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자니 기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요. “군중이 되면 사람이 달라져. 짐승같이 되어버리지. 뭔가 부술 것만 찾다가 나중엔 닥치는 대로 죽이게 돼.”

    집단은 개인의 선한 속성이든 악한 속성이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지요. 문제는 선한 것조차 극대화되면 악에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선이 정말 선다워지는 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때 주저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순간’이 아닐까요. 흔들릴 수 없을 만큼 확신에 가득찬 선을 우린 독선이라 규정한 뒤 악에 가까운 특성으로 분류하잖습니까.

    아도르노는 “전체는 거짓이다”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이를 뻔히 알면서도 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삶의 곤궁함이 있습니다. ‘도그빌’의 그레이스가 모진 수난을 다 받아가면서도 마을에 남으려 한 것은 파국을 빚지 않기 위해서지만, 결국 이 영화는 파국으로 끝나지요. 하지만 그레이스처럼 파국을 만들 잠재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 사람들에겐 집단의 힘은 거부하기 쉽잖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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