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장소로 일약 세계적 명소가 된 오스트리아의 장트 길겐.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은 인구 1000명도 채 안되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빼어난 경치로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늑한 휴식을 준다. 장트 길겐은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가 재임기간 내내 찾았던 여름철 단골 휴가지로도 유명하다.
지난 7월 초 이탈리아 경제차관이 독일 관광객들을 비난하는 바람에 일정을 취소하기는 했지만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이탈리아광(狂)이다. 틈만 나면 이탈리아를 찾는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경우 단골 휴가지는 없고 이탈리아, 프랑스, 이집트 등의 유명 휴양지를 골고루 찾아다닌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지중해의 한적한 섬에 있는 대통령 전용 브레강송 성채에 틀어박혀 철저하게 비공개로 3주일을 보낸다.
유럽에서는 언론들이 지도자의 휴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무슨 책을 읽는가가 종종 뉴스거리다. 책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시 대통령의 이미지를 고려한 때문인지 2001년 여름휴가 때 백악관은 부시가 존 애덤스 전 대통령의 전기, ‘건국의 아버지들’ 등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휴가 중의 독서를 이미지메이킹에 가장 잘 활용한 대통령은 역시 클린턴이다. 10일휴가 중에 12권의 책을 읽어내는 독서광인 그가 보는 책은 발표되자마자 미국인들의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는 우리 대통령의 경우 유럽형보다는 미국형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책을 좋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휴가지에서 대통령이 무슨 책을 읽느냐가 짭짤한 뉴스로 자리잡고 있다. 3일부터 휴가를 갖는 노무현 대통령도 이번 휴가 때 읽을 책 4권을 공개했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과학),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경영), ‘주5일 트렌드’(경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정치) 등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휴가철 독서목록은 국민필독서 혹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권하는 책일 수도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여행가방에 담을 책을 조금 다른 기준으로 골랐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동양이나 우리 고전 한두 권 있으면 좋았을 테고, 변화된 미국과 유럽의 역학관계를 통찰한 로버트 케이건의 ‘미국 vs 유럽’도 추려 뽑을 만하다. 요즘이라면 북한핵이나 핵무기 일반에 관한 책을 가까이 두면 문득 손이 갈 때가 있을 것이다. 숨을 고르는 데는 틱낫한 스님의 ‘화’도 권할 만하다. 아무쪼록 들고 간 책갈피 속에 우리의 사정을 끼워넣어 읽으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음과 동시에 국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푸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이한우논설위원 h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