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산 중에 1953년 창간된 ‘플레이 보이’를 빼놓을 수 없다. 21세기인 지금도 국내서는 ‘포르노’로 치부되는 야한 잡지지만 지난 반세기 ‘플레이 보이’가 남긴 업적(?)도 적지않다.
첫째는 성(性) 혁명이다. 성을 둘러싼 위선을 과감히 벗겨버린 것이다. 물론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다. 하지만 섹스 자체가 아니라 섹스 심벌을 팔겠다는 발상은 획기적이었다.
청교도의 나라 미국에서 이런 잡지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부남 4명 가운데 1명이 혼외 정사를 경험했다는 ‘킨제이보고서’가 당시에 나왔고, 2차대전 이후 정보의 대량 소비와 함께 성의 세속화가 가속되었다.
27세의 휴 헤프너는 이런 ‘성 해방’의 시대를 내다보고 당대 스타 메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을 창간호에 실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청교도의 신화’를 역이용해 성공 신화를 일군 것이다.
‘플레이 보이’의 심벌은 ‘바니(토끼)걸’이다. ‘여성의 상품화’를 비판한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창간하기 전에 플레이 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활약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잡지의 표지나 누드 모델로 활약한 미끈한 여성의 수는 엄청나다.
그렇다고 ‘플레이 보이’가 ‘도색’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독자들도 수준높은 인터뷰와 문학작품, 그리고 사회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들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플레이 보이의 안목’을 인정한다.
목사를 연상케 하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76년 대선 당시 ‘플레이 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마음 속으로 간음을 여러 번 했다”고 털어 놓았다. ‘만화경 같은 눈을 가진 여성’을 노래했던 존 레넌은 80년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여자가 바로 오노 요코였다”고 밝혔다.
쿠바의 카스트로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도 선뜻 나섰을 정도로 ‘플레이 보이’의 심층 인터뷰는 정평을 얻고 있다.
이 잡지에 실린 단편소설과 SF소설은 단행본으로도 인기를 모을 만큼 독자층이 두텁다. 노벨상 작가 보르헤스는 ‘플레이 보이 문학상’을 받았으며, 존 업다이크 등 세계적 작가들이 이 잡지에 신작을 발표했다.
SF문학계에 ‘플레이 보이’의 위상은 각별한데, 쟁쟁한 영미(英美) 작가들이 다투어 기고해 왔다.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는 이 잡지는 성을 터부시하는 이들에게는 ‘악마의 대변자’로 비치겠지만 뭇남성들에게 환상과 자신감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올해 일흔일곱의 창업자 휴 헤프너는 장녀인 크리스티에게 회장직을 물려줬지만 미녀들에 둘러싸여 여전히 노익장의 정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의 성문화도 반세기 전에 비해 혁명적으로 변했지만 ‘플레이 보이’ 같은 잡지는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도덕적 견고함을 증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위선(僞善)의 벽이 그만큼 두터운 것인지 자문(自問)해볼 만하지 않을까.
(정중헌논설위원 jh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