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북한

[김정일의 전속요리사] “자신 빼닮은 3男 가장 좋아해”

  • 잇글링
  • 트위터로 보내기
  • MSN 메신저 보내기
  • 뉴스알림신청
  • 네이트 뉴스알리미
  • 뉴스젯
  • RSS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 기사목록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입력 : 2003.06.20 19:01 / 수정 : 2010.09.06 14:29

북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경험을 최근 책으로 펴낸 후지모토 겐지씨(왼쪽)가 지난 1990년 평양에서 북한 여성과 결혼한 직후인 3월 20일 김정일의 자택에서 김정일로 부터 결혼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 후쇼사 제공

核에 집착… 피폭자 보고받고도 묵묵부답
妻고영희와‘그때 그 사람’들으며 車中연애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56)씨는 1982년 처음 북한 땅을 밟은 이후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요리사 생활을 하다가 1988년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의 생선초밥 전속 요리사가 됐다. 후지모토씨는 1989년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앞으로는 나와 함께 여행이나 하며 즐겁게 지내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후 후지모토씨는 김 위원장이 북한 전역의 초대소를 여행할 때마다 ‘수행’하게 되는데, 그는 김 위원장과 함께 수상스키, 승마, 사격 등을 즐겨 단순히 ‘생선초밥 요리사’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김 위원장의 놀이 친구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 김 위원장, 핵에 집착

김정일 위원장은 1989년 어느날, 옆에 있던 후지모토씨에게 갑자기 “우리나라(북한)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느냐”고 물은 후 “핵무기를 갖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쳐들어온다”고 얘기하는 등 핵무기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고 후지모토씨는 전했다.

1995년 12월30일에는 중앙 당선전부장이던 김기남이 “장군님께 보고할 게 있다”며 김정일을 찾아와 핵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피폭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후지모토씨는 책에서 회고했다.

또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사망한 후 상당히 괴로워하면서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일이 많았다고 그는 술회했다. 어느 날에는 김정일이 곁에 권총을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부인이 놀라 “당신 무슨 생각 하는 거냐”고 말린 일도 있다고 그는 전했다.

◆ 1992년에 낙마, 한때 의식불명

1992년 한때 나돌았던 ‘김정일 낙마설’은 사실이라고 그는 밝혔다. 김정일은 원래 승마를 좋아했으며, 사고가 나던 날은 승마대가 선두에, 그 뒤에 김정일, 처 고영희, 후지모토, 아들들의 순서로 달리고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낙마, 머리와 어깨를 심하게 부딪쳤다는 것.

김정일은 쇄골이 부러졌고 그날 밤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열차로 후송됐다고 그는 전했다. 10일 후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김정일은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으며 선글래스를 벗으니 오른쪽 눈이 시커멓게 돼 있었다는 것.

김정일은 이때 진통제를 맞았는데, 진통제에 마약 성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후지모토를비롯한 측근 5~6명에게 “나만 마약에 중독되기는 싫다”며 다른 진통제를 맞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 김정일은 셋째 아들을 좋아해

김정일의 세 아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그는 김정일 이후의 권력승계와 관련, “2001년에 장남인 김정남이 일본 밀입국에 실패한 이후 김정일 위원장과 고영희의 아들인 김정철(22)이 부각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김정철보다는 3남인 김정운(20)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정철에 대해 “그녀석은 안돼. 여자같아”라고 얘기했다는 것. 반면 김정운은 김정일 위원장을 체형까지 꼭 빼어닮았고 김정일 위원장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고 그는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 처인 고영희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두 사람은 자동차 속에서 밤새도록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노래를 함께 들으며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 고영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 여행도 하고, 몰래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후지모토씨는 술회했다.

◆ 변태적인 연회와 사치

후지모토씨는 북한에서 이른바 ‘기쁨조’중 한 여성과 재혼했다. 재혼 상대는 북한에서 다소 유명한 가수였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다른 ‘기쁨조’와 권투를 하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북한의 연회자리에서는 일본의 군가가 등장했으며, 북한의 한 고관은 술에 취한 채 “전쟁나면 우리가 지키겠다. 지하실도 완성됐고, 온도를 섭씨 22도로 맞춰놨다”고 말했다고 후지모토씨는 소개했다.

김정일은 파티에서 여성들을 발가벗은 채로 춤추게도 했는데, 함께 참석했던 사람들에게는 “만지지는 말고 같이 춤만 춰라”고 얘기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기쁨조가 성적인 상대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고 추측했다.

김정일의 별장들 가운데 하나인 ‘창성 초대소’에서는 일본 최고의 스포츠카 중 하나인 마쓰다의 RX-7이 각 건물마다 한대씩 배치돼 있었지만, 번호판이 달리지 않은, 초대소 내부에서만 오고가는 물건이었다고 그는 얘기했다.

◆ 김정일의 성격

후지모토씨는 20일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평소 잘난 체 하지 않고, 웃는 얼굴이 끊이지 않는, 온후하고 취미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국가 운영에 관한 것, 특히 정보를 보고하지 않거나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국가 최고 간부급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전화 등으로 열화같이 호통을 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 전했다.

후지모토씨는 “한번은 내가 초밥을 만들고 있을 때 최측근이며 매부인 장성택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책상 위의 냅킨 스테인리스 통을 갑자기 던진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후지모토씨는 “김 위원장이 내 앞에서 군 고관에게 ‘그놈을 쏘았느냐’고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며 “말 한 마디로 사람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알고 공포심을 느꼈다”고 되돌아봤다.